모로코 기후변화협약 7차 총회에서 온실가스 감축안이 타결됨으로써 환경라운드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한국은 2000년 말 현재 세계 9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 향후 10년 내 제 7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 될 전망이다.때문에 우리로선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나 방사성폐기물 부지 확보 어려움 등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에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29일 프랑스 원자력청(CEA) 등과 공동으로 ‘제3회 한ㆍ불 원자력 홍보세미나’를 연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프랑스도 우리와 같이 빈약한 에너지자원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다음은 이날 행사에서 전문가들이 발표한 주제발표문 요지다.
▼한국측 주제발표▼
▽조문성(趙文誠) 산업자원부 원자력산업 과장
우리 원전은 경수로 12기와 중수로 4기 등 총 16기의 원자로를 보유, 전체 발전 시설용량의 28%, 실제 발전량의 40.9%를 공급하는 최대 발전원이다.
정부는 원전 산업의 최대 현안인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확보를 위해 지난 해 6월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유치 공모에 나서 마감시한을 한 차례 연장했으나 무산돼 사업자선정을 통한 지자체 협의 방식으로 전환했다. 현재 복수 후보지를 선정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 등을 진행중이다.
정부는 최종부지로 선정된 지역에 대해 관련 법률에 따라 정부의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약 3,000억원의 지역 지원금을 제공할 방침이다.
▽강기성(姜箕星) 국회 맹형규의원 보좌관
1997년 일본 도카이 핵폐기물 재처리시설 화재ㆍ폭발사고는 원전 화재사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정부도 원전 화재 안전감독을 위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안전업무를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로 이관, 효율적인 관리를 도모해야 한다. 탄탄한 관리대책이 국내 원전에 대한 국민의 호응을 얻는 지름길이다.
정부도 환경단체 등과의 평행선 논쟁을 지양하고,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의 방수안전성을 입증해 보이는 대국민 홍보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53기의 원전을 보유한 일본이 30개의 원전홍보관을 운영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이용수(李龍水) 한림대 객원교수
원자력과 관련된 정보는 핵물리학이라는 첨단학문 이어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 원자력에 대한 이미지도 원폭이라는 핵무기에 영향을 받아 다분히 부정적이다. 때문에 원전 관련시설 운영자보다 반핵단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고, 과학ㆍ기술적인 문제로서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인식 혹은 사회적 문제로 귀결됐다.
국민의 이해를 얻지 않고는 원자력과 관련된 어떠한 숙제도 풀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와 원자력관련 단체는 올바른 원자력 정보의 확산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홍보체계를 강화하고 원전지역협의체 등을 활성화해 원자력(원전)의 안전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
▽송명재(宋明宰) 원자력환경기술원 연구개발실장
정부가 추진중인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중ㆍ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천층이나 동굴처분 방식으로 최종 80만 드럼을 수용할 용량이다. 여기에는 2만톤의 사용후 연료 중간저장시설이 들어서고, 폐기물 처리 및 연료 운반ㆍ저장을 연구하는 관련시설도 포함된다.
후보지 1,2차 유치공모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초기의 부정적인 여론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민 자발적인 유치조직이 9개 지역에서 결성됐고, 이 가운데 7개 지역에서 부지유치 찬성 청원을 지방의회나 지자체에 한 점 등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의 전망을 밝게 해 준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측 주제발표▼
▽까사뉴까사뉴 IRMA 프랑스 중대사고연구소 안전환경담당관
프랑스에서는 산업재해나 원전사고, 댐붕괴 등 기술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 자치단체가 고유의 역할을 수행한다.
기업은 산업활동 과정의 위험발생 가능성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에 대해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 조직들은 이러한 위해요인을 상시감시하고 관련정보를 취합하며, 지방의회 등은 이 같은 정보들의 중간전달자로서 기능한다. 여기에는 재난대비 캠페인과 인터넷 전화 지침서 등을 통한 홍보도 포함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주목할 것은 국민 33%가 가장 신뢰하는 홍보기관으로 환경단체를 꼽았다는 점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대국민홍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퐁쉐 CEA 국제협력관
CEA는 원자력 등 첨단기술 관련 연구기관을 카다라쉬와 발로어 그레노블 등 3개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들 3개 연구단지의 연평균 예산은 4억 유로화에 이르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특화단지인 그레노블 지역에는 5억5,000만 유로화가 투자된 방사선전자가속시설(ESRF)이 있다.
이 시설 운영 연간예산(6,500만 유로화)의 30~40%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사용되고 있으며 시설입지로 인한 연구인력 등 고용창출과 교육ㆍ연구역량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CEA는 지난 86년부터 15년간 기술이전 등을 통해 71개의 첨단 기술회사를 탄생시키는 등 지역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클랭 CEA 연구위원
방사성폐기물 처리는 국가별 사회 심리 정치적 환경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원자력 산업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즉 핵물리학 기술의 안전성 확보가 아니라 일반 대중의 이해를 얻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일반 대중의 원자력에 대한 여론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들에 따른다. 프랑스는 이를 국민의 참여와 정보공개 노력을 통해 풀어냈다.
또 원자력을 둘러싼 많은 논쟁은 기술적 관점 뿐 아니라 이질적인 여러 요인을 종합적이고 비기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전문가들과 일반 대중과의 관계설정에서 풀어야 한다.
▽칼라파 골페쉬 시장
프랑스 정부는 원자력정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981년 원전과 연구시설, 처분장 부지 지역에 모두 26개의 지역정보ㆍ감시위원회를 설립했다.
정보위 위원들은 자치단체와 상공인그룹, 환경단체 관계자들로 구성돼 환경방사능 감시와 타 지역정보위와의 경험교류 등 활동을 펴고 있다. 또 상위기관으로 국가정보위원회를 설치, 지역위간의 정보교류와 법률감시, 국제기구와의 접촉창구 역할을 한다.
이 같은 활동은 궁극적으로 원자력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안전ㆍ보건ㆍ위기관리 능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지역정보위는 장기적으로 훨씬 늘어날 것이다.
■국민 90% "원전 필요"
최근 한국원자력문화재단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대다수(90%)가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 중 상당수(60%)는 원전 추가건설에도 찬성했다. 하지만 자신의 주거지역내 원전 건설에 대해서는 60%가 반대해 안전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원전 건설에 대한 한ㆍ미 여론조사(1999~2000) 결과 ‘원전 건설로 이익이 더 많다’는 항목에 우리 국민의 65.8%, 미국인의 48%가 찬성했다.
또 서울대 의학연구원 원전역학조사단이 1998~2000년 원전 주변지역과 근ㆍ원거리 지역 주민의 암 추적조사를 벌인 결과 암 발생자수(사망 포함)는 원전 주변지역 101명, 근거리 지역 94명, 원거리지역 223명으로 나타나, 원전과 암 발병의 상관도가 희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각종 조사결과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원전의 안전성문제가 실제 사실과 달리 선정적이고 흥미위주로 전달됨으로써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ㆍ프랑스 양국 전문가들 모두 원전 홍보가 기술 발전 못지않게 원자력산업의 앞날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라고 주장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또 “원자력 발전이 국가 경제와 환경 등 모든 면에서 그 비중이 커지고 있는 데 비해 그 안전성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국가와 관련기관의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이태섭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우리 원자력산업의 성패는 정부나 관련기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벽을 어떻게 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태섭(李台燮ㆍ사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은 “투명성과 공개성,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원전지역 주민들과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는 “원자력 발전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의 1~3% 수준인 친환경 에너지원”이라며 “최근 기후변화 협약 타결에 따라 온실가스 발생량을 줄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원자력이 가장 현실적이며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화석연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21세기 환경라운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역설했다.
당면과제인 방사성폐기물 부지 확보에 대해 이 이사장은 “과거에는 폐기물의 ‘폐’자도 꺼내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유치운동까지 일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성과”라며 “국가와 지역주민의 이익이 만나는 접점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원자력 문제도 결국 사회갈등의 한 단면”이라며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국민 속으로 들어가 꾸준히 대화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일체감을 갖게 위해 노력하면 불신도 걷힐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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