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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국민의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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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국민의 목숨

입력
2001.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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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국가기관이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다.하나는 한국인이 우리정부가 모르는 사이에 중국에서 처형당했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기관이 살인용의자와 공모하여 무고하게 살해된 한 여인을 간첩으로 몰았던 수지 김 사건이다.

지난 9월25일 중국에서 사형이 집행된 신모씨(41)는 마약제조 혐의로 중국당국에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았던 사람이다.

한국 대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한 중 관계를 껄끄럽게 하는 '골치덩어리' 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한 악질 흉악범이었다 해도 엄연히 제 나라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면 나라 없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제 나라 공관의 외면 속에 타국에서 죽음을 맞은 그 가엾은 국민의 마지막 심정을 상상하면 기가 막힌다.

자국민의 사형 집행을 챙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국 당국이 통보조차 안 했다고 거짓말을 했던 공관 직원들에게 분노했던 국민은 수지 김 사건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있다.

14년이 지난 오늘까지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정보기관의 죄는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른다.

경찰조차 국정원의 '배경설명'을 듣고 수사를 중단했다니 도대체 이 나라에서 국민의 목숨을 소중히 아는 자 그 누구란 말인가.

1987년 1월 홍콩의 한 아파트에서 남편과 싸우다 34살에 숨진 수지 김(본명 김옥분)은 북한이니 간첩이니 하는 것들과는 인연이 없는 여자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호스티스로 일하며 가족들에게 집도 사주고 논도 사준 강한 딸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간교한 시나리오로 김옥분은 일약 '남파간첩'이 되었다. 당시 안기부는 남편에게서 살인자백까지 받았지만 그의 시나리오대로 '남파간첩수지 김 사건'을 만들어 냈다.

박종철군이 물고문으로 숨진 후 조성된 위기를 공안정국으로 돌파하려는 계산이었다.

지난14년 동안 '간첩 김옥분'의 부모형제는 철저하게 파괴됐다. 언니는 정신이상이되고, 동생은 이혼당하고, 오빠와 조카들은 취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죽인 남편은 활개치며 살았고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간첩사건'을 조작한 사람들 중에서 홍콩의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김옥분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지난 3월 김옥분의 오빠가 남편을 고발함으로써 잊혀졌던 14년 전의 사건이 수면위로 떠 올랐다.

무고한 국민에게 간첩의 누명을 씌우고, 그 가족을 파괴하고, 시대가 바뀐 오늘까지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국가기관의 마비된 양심도 수면위로 떠 올랐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건들에 대한 공분이 얼마나 강한 힘으로 흐르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공분이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정부는 이 사건들을 단호하게 처리하여 생명의 중요함을 일깨워야 한다.

국민의 목숨이 관련된 문제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용서가 없다는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김옥분과 서씨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국민의 목숨보다 더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도 될까. 이 세상에 '하찮은 목숨'이란 없는데, 국민의 목숨을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보기관이 아직도 구시대의 범죄를 은폐하려 한다면 군사정부의 행태가 완전히 청산 안된 걸까. 그 무서운 질문들에 대해서 정부는 결단으로 대답을 해야 한다.

국민의 목숨이 관련된 문제에서 과거에 이런 잘못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없고, 진실 은폐에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니, 지금이 과연 21세기인지 헷갈린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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