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가 아니라 청와대가 압력을 넣어도 어림없죠. 이젠 은행의 시스템 자체가 '정책성 대출'을 허락하질 않습니다."시중은행 여신 담당 직원의 말이다. 실제로 요즘 금융가에선 옛 '관치금융'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은행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할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산농장 분쟁.
정부는 1년 전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토지공사를 통해 은행 돈을 빌려 현대에 지원했다.
대신 토공은 현대 소유의 서산농장을 팔아 (위탁매매) 돈을 갚기로 했다. 하지만 상환 약정기한(1년)이 됐는데도 땅은 안 팔렸고, 차입금을 갚을 길이 막막해졌다.
이 때 나온 해결책이 적반하장 격이다.
"서산농장을 담보로한 대출이니 차주(借主)를 현대건설로 바꿔달라"는 것. 혹시 예전 같으면 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채권은행들은 일제히 "노(No)"를외쳤고, 한 은행은 토공의 예금까지 강제 압류하며 역공을 펼쳤다.
뜻밖의 반격에 혼쭐난 정부는 결국 스스로 땅을 팔아 문제를 매듭짓는 쪽으로 '항복선언'을 하고 말았다.
최근 은행가를 들쑤셔놓은 합병논란에서도 정부의 체면은 말이 아니다.
감독당국에선 아직도 '연내 합병 가능성'을 운운하지만, 인수주체로 거론된 우량 은행들은 한결같이"정부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코웃음을 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무리를 해가며 합병설을 흘리는 것 자체가 그만큼 직접적인 압박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은행들은 '노'라고 외치는데 관료들은 언제까지 관치의 향수에 젖어 있을 것인가.
변형섭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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