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누가 만들었을까, 일기를 발명한 사람은 매일 일기를 썼을까…’(딸),‘일기 쓰는 것이 귀찮겠지만 세월이 흘러 과거를 뒤돌아 볼 수 있는 너의 유일한 증거로 남는단다….’(엄마)
딸이 탈진 상태에서 밥을 거르면서도 올망졸망한 손으로 일기장을 채운다. 엄마는 딸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가까스로 잠이 들면 뒷면을 눈물과 한없는 애정으로 메운다.
그런 세월이 벌써 11년. 최은정(崔恩情ㆍ19ㆍ조치원여고 3)양과 어머니 홍석예(洪錫禮ㆍ43)씨 모녀에게 ‘희망의 일기’는 고난의 세월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아름다운 징검다리’였다.
은정이의 단란했던 가정에 평지풍파가 닥친 것은 아빠의 중장비 사업이 부도나던 1992년. 은정이가 10살 때였다.
아빠는 충격으로 술에 절어 지내다 급기야 집을 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정이마저 이름도 확실하지 않은 병으로 쓰러졌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했지만 병원에서는 ‘소아신경성’ 이라는 애매한 답만 했다.
“나쁜 일은 쓰고 그냥 일기장을 덮어버리면 잊혀지잖아요. 우울하다가도 일기를 쓰다 보면 담담해졌어요.”
모녀의 일기는 그때부터 고통의 세월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가 됐다.
아빠가 남긴 빚을 갚느라 난방도 안 되는 어린이집(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창고를 빌려 살며 새벽마다 들이닥치는 빚달리들에게 시달렸지만 ‘희망의 일기’는 멈추지 않았다.
딸이 그만 둔 피아노를 그리워하며 ‘피아노야 다리 아프지. 오랫동안 서 있으니까’라고 적으면, 엄마는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해 미안. 피아노는 언젠가 꼭 사줄게’라고 답장 일기를 썼다.
모녀는 은정이가 어린이 집 아르바이트로 버는 월 10만여원으로 생계를 잇는다. 엄마의 어린이 집 보모 월급 100여만원은 몽땅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은정이네 ‘희망의 일기’는 지난 6월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가 주최한 ‘사랑의 일기’ 시상식에서 환경부장관상을 받아 보는 이들을 울먹이게 했다.
은정이는 올해 수능을 치렀다. 당장 대학등록금이 문제이지만 대학 졸업후 사회복지사나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게 꿈이다.
은정이는 “앞으로는 예쁘고 즐거운 일만 일기에 쓰고 싶다”고 작은 희망을 밝혔다. 문의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02)744-9215, 은정이네 집 (041)865-4444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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