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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꼴불견 / 시도때도 없는 '장례식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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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꼴불견 / 시도때도 없는 '장례식 패션'

입력
2001.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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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일년에 서너 차례 이상은 파리나 밀라노, 도쿄, 뉴욕 등을 방문한다.갈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옷입기다. 자유롭고 창의적이다. 불과 3개월 사이에도 거리 패션이 각양각색으로 바뀌어 있다. 디자이너로서 위기감을 느껴질 정도다.

반면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 달시장 조사차 로마의 스페인 광장 부근을 돌아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한 대의 셔틀 버스가 섰다.

셔틀 버스에서 내린 주인공들은 대번 주위의 시선을 사로 잡았으니… 바로 올 블랙으로 치장한 20대 중반의 동양 여성들이었다.

블랙 원피스에 블랙 선글라스, 블랙 배낭, 블랙 슬리브리스에 블랙 슬림팬츠, 블랙 운동화, 블랙 숄더백까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있는 그들의 옷차림 덕에 축제 마당 같던 스페인 광장의 분위기가 순간 엄숙해지는 듯했다.

마치 장례식의 운구차에서 내리는 유족들을 보는 것처럼. 내심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낯익은 한국어가 들려왔다.

한국 여성들의 블랙 추종은 맹목적이다. 웬만한 패션 거리에서는 4계절 내내 블랙으로 치장한 여성들이 주로 눈에 띈다.

‘물 좋다’고 하는 강남의 고급 나이트 클럽에서는 여성 패션의 80%가 블랙이다. 왜 블랙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한국인의 체형과 머리 색에 가장 무난하게 어울린다고들 한다.

하지만 블랙은 결코 무난하고 편안하기만한 만만한 색상이 아니다. 사실 대단히 화려한 컬러다. 서양에서 시상식이나 파티 때 블랙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적어도 패션이 앞선 도시에서는 핑크, 옐로, 그린 등을 건강하게 소화해내는 매력적인 여성들이 블랙 멋쟁이와 공존한다.

그날 스페인 광장에서의 한국 여성들의 ‘장례식 패션’이 유난히 씁쓸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베스띠벨리 디자인실 정소영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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