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이지만, 정작 시장의 기능에 대해서는 정부당국이나 기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경제학자들조차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시장에 대한 오해는 잘못된 경제정책을 초래하여 경제를 망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
시장에 대한 평가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잘 해결된다는 시장근본주의이다. 시장에서는 항상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균형이 달성되어 완전고용이 이루어지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이다.
시장근본주의는 이기적 행동을 하는 경제주체들이 참가하는 시장경쟁은 경제 전체에 자생적 질서와 조화를 창출한다고 생각한다.
시장만능주의는 시장의 완전성을 믿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일체의 국가규제가 철폐된 자유시장을 지지한다.
시장근본주의는 시장이 빗어내는 불안정성과 불공평성을 외면한다.
다른 하나는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는 반시장주의다.
시장에서 끊임없이 불균형이 발생하고 불안정이 초래된다고 본다. 시장경쟁은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을 초래하여 유휴설비와 실업을 발생시킬뿐만 아니라, 우승열패를 통해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고 사회를 양극화시킨다.
반시장주의에 의하면, 시장은 자생적 질서가 아니라 자생적 무질서를 초래하며, 경제주체들간의 조화가 아니라 갈등을 초래한다.
시장에서는 경제주체들 사이에 억압과 불평등과 수탈이 발생한다.
따라서 시장을 철저하게 규제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기존 사회주의에서는 이러한 반시장주의 입장에서 계획경제를 실시한 바 있다.
반시장주의는 시장경쟁이 혁신을 촉진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긍정적 기능을 과소 평가한다.
20세기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역사는 이 두 극단적입장이 오류임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1930년대 대공황과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규제가 철폐된 자유시장의 완전성을 믿는 시장근본주의의 파산을 선고하였다.
1989년 동독의 붕괴와 1991년 소련 사회주의의 해체로 반시장주의가 파산하였다.
이렇게 인류는 엄청난 학습비용을 지불하고 시장근본주의와 반시장주의가 모두 잘못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는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 채 한편에서는 시장근본주의가 다른 한편에서는 반시장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시장은 '자유-평등-호혜'와 '억압-불평등-수탈', 자생적 질서와 자생적 무질서, 균등화 경향과 양극화 경향이라는 서로 배치되는 두 얼굴을 가지는 야누스적 존재이다.
이 두 얼굴의 어느 하나만 보면 시장근본주의나 반시장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최근 정부 정책 당국자나 국책연구기관 연구자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평론가들이 시장근본주의에 빠져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은 경쟁력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시장근본주의에 따른 경제정책은 한국경제를 다시 파국적 위기에 몰아넣을 우려가 있다.
국가가 정비하는 제도와 시민사회에서 형성되는 신뢰를 통하여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가하여 시장이 제도와 문화에 착근하도록 해야, 시장이 혁신을 촉진하는 긍정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제도와문화로부터 분리된 고삐 풀린 자유시장은 시장 그 자체를 붕괴시키고 사회를 파멸로 이끌 위험이 있다.
시장은 만능도 아니고 악의 화신도 아니다. 불안정성과 위험성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는 세계시장이 국민경제를 좌우하고 있는 오늘날, 합리적 제도 정비와 사람들간의 신뢰형성을 통해 시장을 사회에 착근시켜 시장의 부정성 발현을 억제하고 긍정성이 발휘하도록 하는 지혜로운 정책이 참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김 형 기ㆍ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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