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장정일(39)씨는 “도와준 여러분께 감사하는 작은 자리를 갖고 싶었다”고 했다.23일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열린 ‘장정일-화두, 혹은 코드’의 출판 기념회였다.
대구의 자택에 머물면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고사해온 장씨는 그러나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서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꺼리지는 않았다.
그의 사진을 책에 싣기 위해 출판사가 100여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작가는 담배연기 때문에 희뿌옇게 나온 단 한 장의 사진만을 허락했다.
그만큼 ‘사진 기피증’을 보이는 그는 이날만큼은 카메라 플래시에 눈살만 찌푸렸을 뿐 선선히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대여섯 가지의 질문에 한 번 정도 답했지만, 그 답변은 명확한 것이었다.
‘장정일…’ 에 실은 단상기록은 그가 올 5월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1000장 분량의 산문이 남아 있다고 했다.
신작 시나리오 ‘보트하우스’는 소설을 개작한 것이다.
장씨는 “좋은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문학의 연장”이라고 믿는다. 시나리오를 쓴 뒤 영화사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등 장씨의 소설 5편이 영화화된 만큼, 영화사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40여 곳 영화사의 연락처를 문의해 ‘보트하우스’를 보냈다.
연락이 온 곳은 2곳 뿐이었다. 장씨는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인격이 이벤트화하면 그의 문학성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 버린다. 마광수선생이 ‘즐거운 사라’의 저자로만 규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장정일이라는 작가의 이름만 듣고 ‘외설죄로 감옥에 갔다온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작품을 보지 않아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시나리오는 시인 하재봉씨가 감독을 맡아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다.
장씨는 출판시장의 변화를 통해 경기불황을 체험한다고 했다. “IMF 이전에는 마감 반 년 전부터 출판사에서 채근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조르지 않는다. 늦어도 좋으니까 완전한 작품을 달라고 한다. 불완전한 책은 차라리내지 않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장씨는말한다. “내가 작가가 아닌가 보다. 독촉하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걸 보니.”
그는 열정이 없어졌다고 했다.
“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열의가 사라졌다. 결국 손을 씻지 못해 감옥까지 갔겠지.”
자조하듯 말하던 장씨는 그러나 그 ‘먹고 살기 위한’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한다.
“정말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게 그의 간절한 소망이다. 그는 출판사와 계약한 장편소설을 올해 말까지 넘기겠다고 했다.
민감한 얘기가 나왔다. 그의 단상 기록에 실린 ‘이문열 비판’을 놓고 모인 사람들 간에는 논쟁이 오갔다.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기만하던 장씨는 짧은 한 마디를 던졌다.
“문학이 정치 판단을 제대로 한다는게 쉬운 일일까.”
/김지영기자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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