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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은행들의 자기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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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은행들의 자기모순

입력
2001.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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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에 걸린 환자의 병력(病歷)을 의사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폭로한다면?직업 윤리를 저버린 행위로 지탄 받을만 하다.

연말 결산을 앞둔 은행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이닉스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벌이는 대손충당금 실적 홍보다.

"하이닉스 충당금을 이만큼 쌓았으니 우리은행은 튼튼하다"는 식이다.

기자간담회나 인터넷 홈페이지, 심지어 기업설명회(IR)에서도 하이닉스 충당금비율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참석한 IR에서 "연내에 하이닉스 충당금을 80%까지 쌓겠다"고 공언한 은행도 있다.

대손충당금이란 은행이 대출금을 떼일 경우에 대비해 쌓아놓는 돈.

국내 시중은행들은 채무자를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의 5단계로 분류, 여신을 관리하는데 이 가운데 요주의는 2~19%, 고정여신은 20~40%의 충당금을 쌓는 것이 통례다.

만약 그 이상을 쌓았다면 해당기업은 '회생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충당금에 관한 정보는 철저한 보안을 하는 게 관례다.

물론 은행들은 리스크에 대비해야 하고 특히 하이닉스에서 손을 떼기로 한 은행들이 채권 탕감률만큼 충당금을 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하이닉스를 살려보겠다며 신규지원에 참가한 은행들마저 충당금 실적을 자랑하는 것은 "망할기업에 돈을 꿔주었다"고 떠들어대는 이율배반이자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홍보만을 위해 내뱉는 충당금 수치가 재기를 위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하고 있는 하이닉스 임직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고 있는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변형섭 경제부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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