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여 임기가 아직도 멀었는데, 날개 꺾인 새처럼 풀이 죽어 있는 정권의 모습은 안쓰럽다.DJ가 이렇게 일찍이 당 총재직을 사퇴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다.
정치9단인 그가 스스로 정치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DJ 정권의 업보 탓이다.
이 정권의 가장 큰 업보는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킨 데 있다.
그런 검찰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무슨 게이트가 터졌다 하면 주무대는 검찰이고,그 배경에 어김없이 국가정보원과 정권의 실세, 조폭이 등장한다.
오죽하면 검찰총장 친동생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됐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정권도 검찰도 아무렇지 않게 치부하고 있을까.
DJ정권은 검찰로 재미를 봤다가 검찰로 스타일 구기고, 결국은 검찰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 검찰은 지금 망신살이 뻗쳐있다.
검찰을 이렇게 만든 것은 정권이다.
검찰로 하여금 정권의 가려운 데를 알아서 긁도록 해놓고, 정권의 편의를 봐줬으니 정권도 요런 것쯤은 눈감아 주겠지 안일하게 생각케 했던 것이다.
그러니 검찰 내 요직을 특정지역 출신들로 도배를 해놓고, 끼리끼리와 관련된 일은 적당히 덮어버리고, 남의 일은 철저히 까발려 왔던 것이다.
이 정권에서 손을 댄 정치적 사건들, 이른바 세풍 북풍 총풍 안풍(안기부 돈 선거유용 사건) 등에서 검찰은 야당을 상대로 까발리고, 또 까발리는 철저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정권 경쟁에서 이긴 쪽이 진쪽에 대해 이렇게 못살게 군 적은 없었다.
사실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정치인은 툭 쳐도 먼지가 나오게 되어있다.
후원금 모금이 합법화 하기 전 정치인은 무엇으로 먹고 살았는가. YS와 DJ는 대통령이 되기 전 세금 한푼 안내고도 가족들을 잘 부양하고 돈도 잘 썼는데, 무엇으로 충당했는가.
DJ가 대통령 선거 나갈 때 마다 쓴 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가. 야당의 대선자금을 까발리기전, 이 정권은 최소한 자신들의 대선자금에 대해서도 고해의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정치란 게 참으로 묘하다. 권력이 조지면 조질수록 정치인은 큰다.
오늘의 이회창총재의 위상은 DJ 정권의 핍박 덕이다. DJ도 YS도 실은 그래서 컸다. 이런 데서도 업보라는 말은 실감난다.
DJ 정권은 수평적 정권교체를 처음으로 이뤄냈다. 노태우에서 김영삼으로 자기들끼리 바톤 터치한 전임 정권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역사성을 의식해서라도 DJ정권은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았어야 했다. 정치보복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끼리끼리 나눠먹기로 일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랫동안 차별을 당해온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으므로 적당하게 자리를 나눠 갖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권이 생기는 자리, 힘깨나 쓰는 자리, 관(官)이건 민(民)이건 요직이라는 요직은 싹쓸이 한 뒤, 형님 동생하며 온갖 비리의 냄새를 풍기는 지경에 이른 데서야 민심이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신문사 탄압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정권이 여러 궁리를 해서 탈세를 빌미로 신문사를 조져놓고, 여전히 국세청 단독결정이라고 박박 우기고 있다.
정도세정을 외치며 세무조사를 지휘했던 사람은 강남 노른자위 땅을 패밀리 패키지로 소유하고 있음이 들통났다.
이런 앞뒤가 안 맞는 행동들이 업보를 더욱 키운 것이다.
지나간 잘못을 탓해서 무엇하랴마는, 그 과오를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의 치부책에 DJ 정권의 업보를 기록해야 마땅하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 전임 YS 정권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7,000 달러로 후퇴시키고 물러났는데, DJ 정권은 무엇을 남기고 물러날 것인가. 지금부터가 문제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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