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이정연(49)씨는 캔버스 대신 삼베에 그림을 그린다.삼베의 성근 올이 밑바탕에 자리잡음으로써 대량 생산품인 캔버스의 규격화하고 촘촘한 질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삼베 위에 누런 색깔이 감도는 옻칠을 여러번 하고, 물에 탄 숯가루ㆍ뼛가루 등을 손가락에 묻혀 그림을 그려 자연의 원시성을 강조했다.
28일~12월 1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화랑(02-733-5877)에서 열리는 그의 20번째 개인전은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 위에 있다.
전시작인 ‘Re-Genesis’(신 창세기) 연작 30여 점은 메주나 황토 돌담, 상처 위에 붙인 누르스름한 붕대를 연상시키는 삼베 바탕 위에 조그만 산, 속이 빈 대롱 등을 기호처럼 그려 넣었다.
2000년 작 ‘Re-Genesis 433334’(세로 47㎝, 가로 36㎝)를 보자.
네모난 삼베 바탕 위에 대나무같은 속이 빈 대롱 4개가 그려져 있다. 배경은 귀엽게 생긴 녹색의 산과 자줏빛 호수. 절제된 화면 속에 정답고 순박했던 옛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닐까.
평론가 신항섭씨는 “작품 속에 은근히 드러난 삼베의 질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대 추상화”라며“그 위에 그려진 대롱은 열린 세계로 통하는 매개체로 읽혀진다”고 분석했다.
2000년 작 ‘Re-Genesis 433334’.
김관명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