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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렇게] (45)거리의 낭만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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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렇게] (45)거리의 낭만을 보여주자

입력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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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명동에 나간다. 인파로 북적이기는 예전과 다름없고 그 틈새로 우리는 뒷골목 빈대떡과 막걸리를 찾아 오래전 발이 닳도록 드나들던 추억속의 집을 찾는다. 반갑다. 너 아직 여기 있구나. 아직 때가 이르지만 지난 추억을 안주삼아 들이키는 막걸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적당히 취기가 오른 우리는 또다시 2차를 찾아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가지? 대학로? 좀 재미없다. 신촌? 그곳은 너무 정신없다. 인사동? 에라 아무데나 가자.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가끔 하릴없이 서성이는 외국관광객을 보게된다. 그럴 때 마다 가끔은 우리의 거리문화를 곱씹게 된다. 파리의 샹젤리제, 뉴욕의 소호와 같은 거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들은 한국의 도심거리에서 어떤 낭만을 느끼고 있는 걸까. 혹시 그들이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네 도시는 어느새 멋과 낭만을 잃었다. 먹고 마시며 흥청거릴 것 외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까. 관객 잃은 극장들은 야한 모습으로 거리를 유혹하고 흥청거리는 뒷골목엔 호객꾼이 넘친다. 명동에는 멋쟁이가 없고 대학가엔 청춘이 사라졌다.

얼마 전 공연을 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공연일정 틈틈이 짬을 내 도쿄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하라주쿠, 우에노공원, 신주쿠 등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볼거리가 가득하다(볼거리가 많아 인파가 넘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록밴드들의 진지한 몸부림, 음악에 몸을 흔드는 그들…. 정신없어 보이는 풍경이지만 거리에는 활력이 넘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던 관광객들은 일본 젊은이들의 낭만을 체험할 수 있다.

세계적인 축제 월드컵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축구에 문외한인 나 역시 월드컵에 매료되는 까닭은 아마도 세계인들이 함께 뿜어내는 열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외국관광객들에게 우리가 보여줄 멋진 정취는 무얼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우선 거리부터 윤기나게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예술과 낭만이 넘치는 거리를 만들자. 너무 ‘질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우리들 자신의 멋까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우리네 월드컵에 한껏 멋을 부려보자. 아! 우리의 거리에 낭만을 되살려줄 청춘들이여, 멋쟁이들이여. 지금 모두 어디에 숨어있나.

엄인호·신촌블루스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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