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 (먹다, 바르다와 함께)병이나 상처를 고치기 위한, 또는 병을 예방하기 위한 물질. 2 (치다와 함께)세균이나 해충따위를 죽게 하는 물질■새 정의: 1 (먹다와 함께)상태가 이상해지다 못해 미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물질. 2 (치다와 함께)돈을 비롯한 각종 뇌물
■용례: “너 요즘 이상하다. 약먹었냐?” “정치인들에게 약을 친 업자가 구속됐다.”
한동안 약 먹고, 약 맞은 연예인 이야기가 회자되더니 이제는 정치권이 약 때문에 떨고 있다.
정치인들이 마약을 했다는 말은 아니다. 돈 이야기다. 무슨 무슨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떳떳치 못한 돈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돌고 있다.
서른 명 가까운 국회의원이 관련되어 있다는 보도도 나온 상태다. 돈과 약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약을 친다”는 말은 ‘뇌물을 준다’는 뜻이다.
약은 농촌에서만 뿌려대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이권을 따기 위해 업자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것도 모두 ‘약을 치는’ 일이다.
회사원 최민(30)씨의 설명. “농약을 치는 것은 해충을 없애 농사를 잘 짓기 위한 일이다. 뇌물 역시 무언가 자신에게 이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쓴 것 아닌가.” 그래서 정치권에 ‘약을 친’ 사람은 구속되고 ‘약 받아먹은’ 정치인들은 안달이 나는 것이다.
본래 약(藥)은 사람을 살리는 이로운 물질이다. 감기약, 위장약 등이 그렇다.
그리고 해충을 죽이는 끔찍한 기능을 가진 살충제 역시 약으로 불린다. 요즘에는 또 다른 약이 판을 친다.
필로폰, 대마초와 같은 마약이 또 다른 약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약을 ‘마약’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약이다. ‘약을 하다 구속되는 것’은 바로 마약 때문이다.
하지만 ‘약’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만을 담고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골 장터 약장수는 약을 팔기 위해 온갖 묘기와 입담을 선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약을 팔다’라는 말은 이것저것 끌어대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약을 하는 것’도 국어사전에는 약을 쓰다, 약으로 쓰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만이 담겨져 있었다.
이제는 약을 먹는다는 것의 이면적인 의미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 진다.
“약 먹었냐”는 “너 미쳤냐. 왜그렇게 정신이 없냐”는 말이다. 대학생 김철원(25)씨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친구에게 농담식으로 마약을 먹거나 맞았느냐는 의미에서 ‘약 먹었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사람을 살리고, 해충을 죽이던 약이 뇌물과 마약의 의미로 확대되는 세상. 21세기가 갖는 복잡성과 다차원성의 전형인 모양이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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