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조란 붉은 색이나 황색을 띠는 식물플랑크톤이 수온 상승과 더불어 질소나 인 같은 영양분이 증가함에 따라 갑자기 대량번식을 하게될 때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육상생태계에서도 식물이 생산자계층을 이루듯이 식물플랑크톤도 바다생태계 먹이사슬의 기초를 이룬다.
따라서 이런 식물플랑크톤들이 풍부하게 존재해야 풍성한 생태계가 유지될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적조가문제가 되는 까닭은 이런 식물플랑크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끓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해안에 적조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코클로디니움이란 식물플랑크톤은 지름이 30마이크로미터밖에 안되는 미세식물로서 물고기가 물을 들이마실 때 한꺼번에 너무 많이빨려 들어와 아가미가 막혀 질식하게 된다.
또몇몇 적조식물들은 강력한 신경독소를 지니고 있어서 조개나 굴 등의 조직에 축적되었다가 사람이 섭취하게 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요즘 와서 부쩍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지만 사실 적조는 오래전부터 늘 있어왔던 ‘자연스런’ 자연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적조 기록은 신라 선덕왕 8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여름 동해의 물이 붉게 물들고 고기와 거북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근래들어 훨씬 자주 그리고 대규모로 벌어진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여름은 물론 95년 여름에도 엄청난 규모의 적조가 발생하여 우리나라 연안 양식장들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적조가 날이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바다 생태계의 부영양화 때문이다.
육상생태계로부터 흘러드는 생활하수와 농업용수에 녹아 있는 엄청난 양의 질소와 인이 주범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이 만들어준 가장 훌륭한 정화시설인 갯벌마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라 앞으로 적조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비슷한 현상이 우리 벤처생태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같다.
몇 년전만 해도 불황의 늪에 빠진 우리경제를 살릴 구세주이며 심지어는 재벌의 대안으로까지 거론되던 벤처 총아들이 요즘 늦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나가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적인 수준의 벤처기업을 100개씩이나 만들고 그 중에서 최소한 20개는 미국 나스닥 시장에도 상장할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와는 달리 엄청난 수의 탕아들을 길러내는 골칫거리가 된듯 싶다.
무엇이 우리 벤처생태계를 이처럼 황폐하게 만든 것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자연생태계를 연구하는 학자라서 다분히 인위적인 경제생태계의 메커니즘을 파악할만한 능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우리 벤처생태계에 왠지 음산한 적색이 감도는 걸 느낀다.
자연생태계가 앓고 있는 적조라는 중병의 증상이 벤처생태계에도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진단해 본다.
구조적으로 건실하지 못한 생태계에 어쭙잖은 부영양화가 일어나며 '사이버 벤처'라는 귀신들이 출몰하지 않나, 벤처업계를 일종의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투기꾼들이 들끓게 되었다.
갑자기 수온이 급상승한 시장에서 마구잡이로 흘러드는 영양분들을 빨아먹으며 우리 경제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는 이들이 내겐 자꾸만 '적조기업'들처럼 보인다.
벤처열병이 휩쓸고 지나간 곳은 업계만이 아니다.
요즘은 조금 안정을 되찾은듯 싶으나 대학에서도 한 때 너도나도 벤처창업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명색이 과학기술 분야에 있으면서 벤처기업 하나 차리지 못하면 은근히 능력 없는 교수 취급을 받았다.
아무리 순수과학을 한다는 자연과학대학이라도 곧바로 응용할 수있는 연구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학내 벤처기업들 중의 일부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다.
미처 다 익지도 않은 과일을 가지고 주스를 만들어봐야 제맛이 날 리없다.
일부 능력있는 교수들이 벤처를 하는 것은 사회나 학문을 위해 분명좋은 일이겠지만 대다수가 그런 물살에 휩쓸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학생들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아직 별로 배운것도 없는 그들이건만 무지몽매하게 뛰어들어 배움의 기회마저 잃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늘하는 얘기지만 결국 기초가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정부는 지금 국민연금까지 동원하여 금년 말까지 총 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란다. 엄청난 적조가 온 나라를 붉게 만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급작스런 부영양화는 기회주의적 적조기업만 양산할 뿐이다. 더도 말고 5000억의 반만 뚝 떼어 기초학문에 투자하면 적조도 줄이고 장차 벤처생태계도 더욱 건실해질 터인데.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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