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경제난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최소단위가 가정인데, 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연도별 가출자 현황'에 의하면 올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주부 가출자가 무려 3,888명으로 집계됐다.
'경제난에 기인한 가정불화'가 주부 가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경찰청이 분석한 가출주부 수치는 같은 기간 성인여성 가출자(9,417명)의 41%를 차지하며, 전체 가출자(2만312명)의 19.1%에 해당된다.
전체 가출자 5명중 1명이 주부인 셈이며, 한달에 1천명의 가정주부가 집을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집 나온 주부들이 과거와는 달리 귀가(歸家)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경찰청은 분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부들의 가출기간이 장기화되면 대개의 경우 '가정불화→ 가정해체'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가정은 최소의 사회조직이며, 가정이 부실한 사회에서의 다른 모든 조직도 튼튼해지기 힘들다.
생각해보라. 가정에서 싸우고 출근한 '남편'이 직장에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겠는가.
출근 전에 남편과 말다툼하고 사무실에간 '아내'인들 일을 평상시처럼 해낼 수 있을까.
한걸음 더 나아가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은 누가 책임질까. 양육(養育)은 어떻게든 해결한다 해도, 자라나는 아이에게 가해진 보이지 않는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여기서 이야기를 잠깐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
신도들 중 몇몇은 내가 가정문제를 이야기하면 "가정도 없는 스님이 가정에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불교를 모르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불교는 연기적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
연기(緣起)는 쉽게 말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ㆍ연결돼 있다는 입장에서 사물ㆍ세계ㆍ존재를 보는 것이다.
내 책상 위의 전화기는 전화기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책상이 있고 내가 있고 책들이 있기 때문에 '내 책상 위의 전화기'가 된다.
'탁자 위의 물컵'도 마찬가지다. 탁자가 있고 의자가 있고 컵을 들고 물을 먹는 사람이 있기에 '탁자 위의 물컵'이 된다.
물컵은 물컵이고 탁자는 탁자고 의자는 의자이지 무슨 연관이 있는냐고 생각하는 방식이 소위 반(反)연기적 사고방식이며, '이분법적 사유'에 다름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사고를 철저히 배격한다. 자기만 존재하기에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도 자연도 환경도 있기에 자기가 존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연기적 사유구조에서 보면 타인의 불행이 바로 나의 불행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이 바로 나의 기쁨이 된다.
연기적 존재이기에 '불이(不二,둘이 아님)'이고, 자연스레 자비행을 펼치라고 불교는 가르치는 것이다.
'사회의 문제'는 바로 '절집의 문제' 가 되며, '출세간의 문제'가 '세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회 속의 다른 많은 문제들처럼 가정문제도 마찬가지다.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리고, 사회가 흔들리면 당연히 사찰도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다른 스님들도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정 불안'을 걱정스럽게 보지만, 같은 이유에서 우리나라 정치권의 싸움도 불안하게 쳐다본다. 정치권의 끝없는 기세싸움은 당연히 세간ㆍ출세간에 영향을 미쳐 편안하게 살고 있는 사람마저 힘들게 만든다.
특히 벌써 겨울이다. 불이ㆍ연기의 사고방식이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시기다.
겨울철을 춥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아직도 많고, 그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고 싶다면 개개인의 마음을 먼저 따뜻하게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홍스님 조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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