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인 인물이죠. 아버지와 동생의 등에 칼을 꽂는 패륜아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면 자신의 몫을 챙기기 위해서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고요.”이복동생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아버지 견훤과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신검.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복잡한 인물이다. 하지만 KBS1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신검역을 맡은 이광기(32)의 분석은 단순했다.
“제 밥그릇을 지키려는 것일 뿐이죠. 후백제라는 한 나라를 짊어질 후계자로서 아버지 견훤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죠. 친동생도 아닌 이복동생에게 밀려서요. 나름대로 처절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려 몸부림치고 있는 거에요.”
“머리로 분석하기보다는 감정에 충실하겠다”는 이광기는, 그래서 오히려 인간 본성의 핵심을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2주전 방송된 고창전투. 견훤과 금강이 사면초가에 몰렸음에도 신검은 고려 유금필 때문에 막힌 길을 핑계로 연합작전을 실패로 몰고 갔다.
내심 견훤과 금강이 전투에서 패배하기를 바랐다. 더군다나 견훤과 금강이 살아있음에 한숨을 쉰 신검이었다.
시청자의 비난이 두려울 법도 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가 나(신검)에 대해 어떻게 평했나 보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좌절 당한 신검을 동정하는 이들도 많아요. 분에 차서 ‘어이구 어이구’하는 소리를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죠. 신검이 미움만 사는것은 아니더라구요.”
2002년 2월까지 연장 방영을 하게된 ‘태조 왕건’에서는 이제 신검과 견훤 부자, 신검과 금강 형제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이 본격화한다.
견훤이 마지막 기회로 준 송악전투에서 송악을 불바다로 만들고도, 유금필에 대한 사심 때문에 결국 패하고마는 신검.
등창으로 고생하던 견훤이 금강을 후계자로 정하자, 쿠데타를 일으키고 금강을 살해한다.
아버지까지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후백제의 내분은 고려의 통일을 앞당긴다.
지난해 4월부터 ‘태조 왕건’에 출연했지만, 처음 이광기는 ‘튀는’인물은 아니었다. 이광기는 막바지를 기다려왔다.
“처음 캐스팅 될 때 신검은 후반부에서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했어요. 왕건과 마지막까지 대립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신검이 왕건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해 목숨을 구한다는데, 드라마에서는 신검을 살려줄지 죽일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1시간이 넘는 분장에, 최근에는 전투장명이 많아져 밤샘 촬영은 예사다.‘왕과 비’에서 세조의 아들이자, 인수대비의 남편인 도원군으로도 출연했으나 이광기는 낯익은 얼굴은 아니었다.
“1985년에 데뷔했으니 무명생활이 길죠. 현대물도 해보고 싶은데, 기회가 올지….” ‘태조 왕건’에서 그의 이름처럼 점점 광기어린 신검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꿈도 곧 이뤄질 것 같다.
자신의 자리를 위해 패륜을 저지르는 불운한 신검. 이광기의 광기어린 연기가 서늘하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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