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지난해 초 경찰이 자체 내사 중이던 수지 김 사건에 개입해 수사를 중단시킨 대공수사국 간부에 대해 검찰에 수사의뢰키로 함에따라 국정원 및 경찰 고위층의 개입여부를 놓고 메가톤급 태풍이 몰아칠 전망이다.국정원은 최근 자체 감찰조사 결과 당시 김승일 대공수사국장과 단장,과장 등 4명이 경찰에 외압을 행사,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사실을 밝혀냈다.검찰도 이미 경찰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국정원 간부의 외압여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온 상태여서 국정원과 경찰내 외압 관련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대공수사국은 국정원내에서 간첩·대공 사건에 대한 실질적 수사권을 가진 부서로 1987년 수지 김 사건수사 당시,남편 윤태식 씨로부터 살인혐의를 자백받은 것은 물론,지난해 경찰수사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일단 국정원이 수사의뢰키로 한 김 전 국장과 간부 등을 소환,외압경위에 대해 집중 조사하는 한편 국정원 고위층이 개입했는지,어느 선까지 보고가 올라갔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대공수사국은 국내파트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이며 지난해 2월 경찰수사가 진행될 당시 2차장은 엄익준씨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엄씨와 김 전 국장 등이 수사국 직원들을 동원,경찰수사 과정에 개입해 수사를 중단시켰을 가능성이 높아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엄씨는 지난해 2차장 재직 시절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같은 해 5월 숨져 엄씨가 끝까지 이 사건을 챙기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엄씨의 뒤를 이어 지난해 4월 부임한 김은성 2차장이 외압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으나 본인은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엄 전 차장이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이 사건을 보고햇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수지 김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외사과에 대해서도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경찰은 당시 홍콩 주재관 조모 경정을 통해 홍콩경찰로부터 수사자료를 넘겨 받아 남편 윤씨의 혐의를 상당부분 밝혀냈으나 국정원의 외압을 이유로 수사를 중단했었다.
검찰은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외사3과 수사 실무진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한 뒤 외사관리관 등 지휘라인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수지 김 사건에 대한 내사 및 외압사실이 "당시 경찰 수뇌부에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전망이다.국정원은 최근 검찰 수사과정에도 개입하려다 검찰의 반대로 실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자기 조직이 잘못한 일이라 그런지 수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며 "그러나 누사의 대의명분과 혐의가 확실해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87년 안기부는 김씨 시신이 발견된 직후 윤씨의 혐의를 자백받았으며 이를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에게도 보고한 것으로 안다"며 "공소시효가 지나 당시 관계자는 처벌하기 힘들지만 진상규명과 함께 지난해 외압행사 관련자를 철저히 수사해 사법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성규 기자
■'수지 김 수사중단' 어떤처벌 받나
지난해 경찰의 ‘수지김 사건’수사를 ‘완력’으로 중단시킨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은 어떤처벌을 받게 될까.
우선 형법상 직권남용죄(제123조)가 적용 수 있다. 이 죄는 공무원이 직무를 남용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 적용되며 혐의가 인정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물론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국정원 직원의 직무관련성이 입증돼야 하나 이번 사건의 경우 관련자들이 대공수사국 소속이며 은폐대상이 간첩사건이었기 때문에 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또 신분상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의 금지(제11조) 위반 혐의도 적용 받을수 있다.
같은 법 19조에 의하면 이 조항을 위반하는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는 7년 이하의 징역 및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 경우에 따라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제136조) 또는 위계(僞計)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제137조) 혐의도 적용가능하다.
이에 반해 국정원의 요구를 수용, 수사중단 명령을 내린 경찰 간부에게는 형법상 직무유기(제122조)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이 혐의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遺棄)한 때에 적용되며 죄가 인정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협박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수사권을 포기했거나 대공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관할권을 인정하는 등 수사중단에 고의성이 없었다면 자체징계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당시 국정원장 임동원씨 본보와 통화
수지 김 사건의 경찰수사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중단 요청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국정원장등 국정원 수뇌부의 개입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당시 국정원장이던 임동원(林東源)청와대 통일특보는 22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수지 김 사건의 경찰수사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중단 요청에 대해 보고 받은 적이 없고 아는 바도 없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라면 국정원의 수사중단 압력은 국정원내 국내파트에서 독자적으로 기획, 실행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임 전 원장은 “국내 파트는 2차장이 총 책임을 맡아 해왔다”며 “이 사건은 국정원장에까지 보고될 사안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임 전원장은 또 “수사중단 요청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 지는 알지 못한다”면서 “사안에 따라 대공수사국장 선에서 전결되거나 2차장까지 보고된다”고 말해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이 사건의 파문이 국정원 수뇌부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내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당시 임 원장은 대북 업무에 몰두하느라 국내업무는 사안의 중요도에 관계없이 전결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 틈새를 노려 일부 수뇌부와 실무진이 은밀하게 수사중단 압력건에 깊숙이 개입했을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수지 김 경찰수사팀 '당혹'
경찰청은 22일 국가정보원의 수사중단 요청으로 수지 김 사건에 대한 경찰수사가 중단된 사실이 알려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지 김 사건은 경찰 내부적으로도 쉬쉬해 오던 사안으로 이 사건을 수사한 실무자들은 말을 아끼는반면 고위간부들은 수사중단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반응이 엇갈렸다.
이 사건 수사 최고책임자인 김병준(金炳俊) 당시 외사관리관(현 정보국장)은 “당시국정원 직원들로부터 정식으로 사건인계 요청을 받고 수사를 중단한 만큼 경찰로서는 규정에 어긋난 점이 없다”며 “당시 이무영(李茂永) 청장에게도 이 사실을 구두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 실무책임자인 당시 외사3과장 이모 총경은 “해외에나갔다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당시 사항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뭐라 말할 내용이 없다”며 입을 닫았다.
국내에서 이 사건조사를 벌여온 외사분실의 김 모 경정은 “홍콩으로부터 수사자료를 받아 조사를 벌이던 중 수지 김 가족의 검찰고소로 사건서류를 검찰에 넘겨줬다”며 “국정원의 수사중단 요청 여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수사중단 요청과 관련,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가 서울지검의 조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돼 실무진에서도 국정원 외압사실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홍콩경찰로부터 협조를 받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던 홍콩주재관인 조모 경정은“당시 수사를 벌였던 것은 사실이나 위로부터 수사중단 지시여부에 대해서는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다만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데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전 청장은 연락이 되지 않아 국정원측으로부터 별도 요청전화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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