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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런 일] 낙종을 특종한 신문, 특종을 낙종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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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런 일] 낙종을 특종한 신문, 특종을 낙종한 신문

입력
2001.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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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인 1981년의 일이다. 당시 모 조간신문사 사회부장이 편집국으로 찾아온 서울 동대문경찰서 간부들에게 "동대문경찰서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그 간부들은 피해자를 피의자로 만든 형사들의 '조서 조작' 사건을 작게 취급해달라고 애원하려 갔다가 이 한마디에 그대로 물러났다.

피해자 가족의 진정으로 형사 3명이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구속됐던 이 사건은 또 다른 조간신문 수습기자의 '특종'이었다.

당시 동대문경찰서 기자실은 한국일보의 '북부세무서원 피살은 청부살인이었다'는 특종보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기자에게 특종과 낙종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다. 특종과 낙종을 오가며 그날 그날의 지면으로 승부를 걸며 사는 기자들을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런 기자들이 퇴근 시간 무렵 자신이 근무하는 세무서 정문에서 세무서원이 살해된 사건으로 속보 경쟁을 하던 중 범인 검거를 낙종했으니 만회를 위해 와신상담하던 상황이었다.

모신문사 사회부장이 경찰 간부들에게 그 같은 말을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같은 와중에 또 다른 조간신문 기자가 형사들의 조서조작 사건이라는 '대어'를 낚은 것이다. 당시 조간은 한국일보 등3개지였다. 조서조작 사건을 취재한 신문의 동대문서 출입기자가 가판이 나오기 직전 '특종'을 했다며 사건 개요를 알려주었다.

신문이 나오고 나서 당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빨리 데스크에 알려 욕을 덜 먹으라는 동병상련에서 였다.

어제의 특종은 오늘의 낙종 앞에 맥을 못춘다. 한국일보에도 동대문서 간부들이 왔다. 세무서원 청부살인 사건을 특종한 신문이기에 작게 취급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기사는 한국일보가 사회면 톱으로, 사회부장이 강하게 퇴짜를 놓았던 신문은 사회면 2단으로 취급했다.

정작 '특종'을 했던 신문에는 한 줄도 보이지 않았다. 낙종한 꼴이었다. 더구나 필자는 낙종한 것인데 톱으로 보도되는 바람에 마치 특종 처럼 보였으니 그 동료 보기가 안스러웠다.

동대문경찰서의 한 간부는 필자에게 "구속된 형사들이 출소후 해코지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며 협박성 하소연을 했다.

한국일보가 톱으로 보도하지만 않았어도 석간이 크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기자들은 취재현장에서 본분과 인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 간부의 '해코지' 발언에 대해 "기자도 깡다구가 있다"는 말로 더 이상 문제삼지 않은 것도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 툭하면 언론사와 취재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관공서나 공무원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서로가 본분을 지키고 이해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권력을 가진 기관이나 공무원의 권한 남용이나 직무 유기 등 본분에서 벗어난 일탈행위를 보면서 오래전 사건이 떠올랐다.

/정재용 주간한국부 부장 jr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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