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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우리의 일상이 왜 이리도 낯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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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우리의 일상이 왜 이리도 낯설까

입력
2001.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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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김두섭ㆍ김영하 엮음·홍디자인 발행진실로 파괴적인 것은 일상(日常)이다.

눈 비비고 일어나 출근하거나 학교로 가고, 일하고 공부하고, 먹고 마시고,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야 하는 하루살이.

바로 우리의 생 자체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사물을, 거리를, 세상을 ‘본다’. 그러나 사실은 ‘보지 않는다’. 일상은 관습적으로 거기 그냥 존재하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보이지 않았다.”고 ‘일상’이라는 책을 만든 이들은 말한다.

테러 혹은 전쟁이 한 순간 인간을 괴멸시킨다면, 일상은 그것을 주목하지 않을 때 우리를 서서히 아주 질기게 파괴시켜 버린다.

트로츠키는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다지만, 그의 말에서 전쟁은 일상으로 바뀌어도 무방하다.

‘일상’은 독특한 책이다.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4학년 학생들이 ‘채집’해서 찍고 작업한 이미지들에다 소설가 김영하(33)씨가 문학적ㆍ비문학적 텍스트들을 붙였다.

학생들의 담당 교수였던 김씨의 동갑내기 그래픽 디자이너 김두섭씨의 아이디어였다.

책에 실린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진과 그래픽은 김영하씨가 고른 시ㆍ소설의 문장이나 신문기사, 혹은 인터넷에 올려진 글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지은이들은 우리의 일상을 33개의 이미지군(群)으로 분류했다.

문, 아파트, 담, 신문, 주차금지, 티켓, 헤어스타일, 맨홀 같은 세목들이다.

일상적으로 보는 것들이지만 그것이 한 장의 사진이나 이미지로 제시된 것을 보는 느낌은 ‘낯설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우리의 일상인가.

여기서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얼마 전 책으로도 나왔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이야기다.

사통팔달의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었다. 연암이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자신은 장님인데 수십 년만에 눈을 뜨게 되어 동네 구경을 나왔다, 그런데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정신이 없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연암은 말했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우리는 일상에 관한 한 그런 장님들인지 모른다.

우리가 아침에 나서는 아파트의 문, 혹은 벌집의 문에는 ‘건축예찬’을 쓴 지오 폰티의 글에서 “남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간다는 것은 꿈을 짓밟는 것이며, 그리고 절망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텍스트를 붙였다.

도시의 길에는 이문재 시인의 ‘내가 걸어가는 길은 결국 간판의 길이다/ 강자는 간판과 그 주인이고 나는 약자 소비자일 뿐이다’라는 시구가 어울린다.

이제는 노소를 불문하고 한시라도 곁에 없으면 안될 생필품이 된 휴대폰, 젊은이들이 날려대는 이모티콘의 이미지들은 기괴하다.

지은이들은 그것을 우리 일상의 외로움, 혹은 ‘정신의 바이브레이터’로 파악한다.

“삐삐 혹은 핸드폰은 타인의 신호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안, 정신의 마스터베이션을 위해 존재하는 기기인지도 모른다.”

‘빨강’으로 분류된 이미지들(빨간 냉면집 간판, ‘빨간’ 비디오들, 빨간 돼지저금통, 콜라 광고의 빨간색 등)에 김영하씨는 김언희의 시 ‘의자였는데’를 붙였다.

‘의자였는데/ 내가 앉으니 도마였다/ 베개였는데/ 내가 베니 작두였다/ 사람이었는데 내가 안으니/ 내가 안으니 포장육/ 손톱 발톱이 길어나는 포장육’

24시간의 일상을 지나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유하의 시 ‘참치죽이 있는 LG25시의 풍경’이 그 방향을 말해준다.

‘24시간의 일상, 그 끄트머리엔/ 25시라는 상상의 편의점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 영혼의 살점을 지불할 수 있는 자만이/박쥐처럼 익숙하게 스며들 수 있는’

우리는 ‘영혼의 살점’을 지불해 버린 채 일상에 파묻혀 일상의 참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지 모른다.

이 책에 실린 이미지와 텍스트들은 일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 혹은 ‘낯설게 하기’로 일상의 의미를 탐문하고 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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