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본 홍윤오기자 제5信…아프간취재 뒷얘기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기자들이 또다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ㆍ영 특수부대원 처럼 보다 깊숙히, 보다 먼저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한창이다.
1개월전 파키스탄에 도착한 기자는먼저 이슬람 이라는 문화적 충격에 적응하는 게 급선무였다.
도무지 나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수염에 터반과 차도르에 부르카 까지. ‘난’이라는 넓적한 빵에 꼬치 처럼 나오는 케밥 아니면 양고기, 그리고 우유를 듬뿍타서 먹는 짙은 차. 모든 것이 익숙해질 때까지 수없는 배앓이를 해야하는것들이다.
수염도 그랬다. 처음엔 하루 이틀 면도를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귀찮기도 했거니와 이곳에서는 수염을 기르는 것이 자연스런 문화였다.그래서 이제는 기자도 덥수룩한 수염에 ‘자미’라는 긴 옷만 걸치면 영락없는 무슬림이다.
다른 나라 기자들은 이슬라마바드 주재아프간 대사관 앞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매일 아침 아프간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얻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러는 동안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수염을 기른 똑 같은 모습이 되어갔다. 하지만 지난 13일 나와 같은 ‘무리’들이 갑자기 ‘닭 ?i던 개’ 신세가 됐다.
카불 함락과 함께 탈레반이 급속히 붕괴하면서 비자발급의 주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사관 주변을 서성이던 브로커들에게 준 몇 천달러에 이르는 돈을 날린 기자들도숱하다.
서로 신세를 한탄하던 우리에게 낭보를전해준 것은 페샤와르의 파슈툰족 망명 군벌들이었다.
잘랄라바드를 ‘접수’하기 위해 향하는 600여명의 무자헤딘 뒤로 100여명의 다국적 기자단이 따라붙었다. 저마다 한껏 기른 수염을 달고.
잘랄라바드에 도착한 것은 15일 저녁7시께.낭가하르주지사 관저에 들어서자 마자 기자들은 어둠 속인데도 불구하고 위성전화 안테나를 세우고, 노트북과 디지털 전송기를 연결하는 등 취재경쟁에 들어갔다.
19일 피살된 로이터 통신 등 4명의 기자를 본 것도 그때였다.
이탈리아 코리에레 델라 세라 지의 여기자 마리아 쿠투리는 숱한 전쟁취재 경험을 드러내 듯, 남자용 검은색 레이밴 선글라스에 언제나 입에 담배를 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처 호텔방에 들어가지 못한 절반이상의 기자들은 관저의 넓은 방에서 맨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다행히 기자는 호텔을 잡을 수 있었지만 처지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허름한 창고에 철제 스프링 침대 2개만 달랑 가져다놓은 정도다.
화장실도 방을 나가 공동으로 써야하고 그나마 온수나 화장지는 기대도 하지 못한다. 몇몇파키스탄 기자들이 입고 있는 차도르의 ‘위력’도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엔 저런 거적대기를 왜 감고 다니나 싶었는데 밤이 되고 보니 아무데나 누워서 둘둘 말아 덮고는 잠을 잔다.
전쟁취재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기자들의 준비물도 ‘간단한 단독군장’이었다. 위성전화에 노트북과 카메라, 옷가지두벌과 슬리핑 백이 전부다.
카불에서 최고급이라는 스핀자르 호텔도 더 추운것만 빼면 상황은 비슷했다. 신기한 것은 그 추운 날씨에도 모기가 있어,기자의 왼쪽 손등은 물린 다음날부터 퉁퉁 부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최근의 전쟁은언제나 이런 빈곤한 곳에서만 일어난다. 종군기자들은 전쟁의 원인은 알지도 못하고 부유한 나라의 잣대로 기사를 쓰고는 떠나버린다.
기자도 멀잖아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겠지만 마음은 편치가 않다. 과연 전쟁의 진실을 얼마나 보았던 것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홍윤오기자
yo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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