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생을 가장 낭만적으로 그려낸 소설의 한 문장을 꼽으라면 나는 다음 문장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그렇게 우리들 인생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붕괴된다.’
어느 쪽이든 극단은 낭만적이다. 우리는 그 극단을 비켜가려 하지만, 인생 자체가 극단을 닮아 있음에 어찌하겠는가.
이러한 생의 진면목을 눈치챈 신진 소설가가 있다. 지금은 독일에 가 있는 배수아라는 여자다.
그녀는 분단 조국 이쪽 저쪽 순응주의자들로부터 유괴당한 한 지식인의 비극적 삶을 단칼에 내리쳐 피가 뚝뚝 듣는 그 단면을 보여준다.
평양에 처자를 둔 북의 사람 그는, 김무사라는 가명으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조국을 위한 이타심때문이었다. 뛰어난 과학자인 그는 서울에 은둔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며 남과 북, 두 조국을 위해 묵묵히 일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자체가 낭만이었다. 남에서는 전향을 원했고 북에서는 그의 제거를 목표로 했다. 그를 비웃으며 정보원이 말한다.
“가장 가증스러운 힘은 완전하게 인간을 지배하면서 그 자신은 한없이 자유롭다고 스스로 느끼게 하는 마취력이죠. 그런 힘은 인간을 은둔하게 합니다. 정치적인 것에서 자유롭다고 상상하고 권력 구조에 순응하는 인간들을 천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버림받아 아무 곳에도 돌아갈 수 없는 무국적자 김무사는 케이블 TV를통해 일본 NHK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다.
보지 말았어야 할 프로그램이었다. 화면에는 평양에서 국경 지방으로 추방당한 그의 열 살난 아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배수아는 화려하고도 낭만적인 필치로 울음도 잃어버린 은둔자의 아들을 묘사해 낸다.
‘아이는 가려운 듯이 귀를 만졌다. 이상할 만큼 커다랗고 길쭉한 귀였다. 아이는 오래오래 만졌다. 그리고 마침내 귀에서 아이가 파낸 것은 희고 통통하고 윤기나는 구더기 두 마리였다. 건강한 구더기는 싱싱하게 살아서 아이의 손가락 끝에서 꿈틀거렸다.’
배수아는 이 문장을 우리의 조국 코리아에 바치고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살고 있는 모든 국민과 인민은 어떤 경우든 어쩔 수 없이 낭만주의자들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평소의 표정대로 배수아는 담담하고 절제된 보고문투의 문장으로 이 비극적인 민족의 꼬락서니를 묘파해 냈다.
이 소설을 읽은 나의 감동은 부끄러움이었다. 또한 ‘은둔하는 北(북)의 사람’을 읽을 줄 모르는 독자들로부터는 나 또한 인정받고 싶지도 않았다.
전해들은 말이지만 배수아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경멸한다고 한다. 나는 경멸받아 마땅하다.
마르시아스 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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