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같은 시간들이 흘러간다. 뭘 하긴 했는데, 꼭꼭 짚어가며 일을 했는데, 초저녁 홀로 누워 벽을 쳐다보고 있자니 지나온 시간들이 몽실몽실 움직이며 흩어져 사라져 간다.푸른하늘 뭉게구름을 쳐다보는 내가 있다. 푹신할 거야, 올라가서 쉬고 싶어, 아니 솜사탕처럼 생겼으니 막대기를 꽂아서 쥐어 뜯어먹을까?
끈을 놓친 상념은 막무가내 위로 치닫는다. 끈 없는 허공이 불안하여 눈길을 아래로 향한다. 그래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더 아래로, 아래로, 겸허히 고개숙여 보니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한 권의 책이란 이렇게 인간의 ‘고개 숙인 자세와 아래로의 시선’을 요구한다.
도박을 하는 인간도 설거지를 하는 인간도 시선은 아래로 향하지만, 심적 자세가 다르며 시선의 빛깔이 다르다.
책을 읽는 이의 눈빛은 무슨 빛깔일까?
아마, 깊은 산 깊은 나무의 색채와 닮았으리라. 법률을 음악이나 그림으로 정리할 수 없듯 문서를 이미지로 마감할 수 없듯, 문자는 인류 문화의 아버지다.
난 화가이니 인류 문화의 어머니는 이미지라고 해야겠다.
난 어머니의 딸이지만 아버지를 존경하고 신뢰한다. 살아 움직이는 감성적 도구인 문자가 어머니의 솜씨를 빌어 아름답게 디자인된 이 ‘책’이야말로 만인의 구원이다.
사이버 책과는 비교도 안되는 이 종이책, 감촉, 냄새, 색채와의 육체적 접촉은 육체적인 사랑과 같다.
창작 생활에 필연적으로 전제되는 고립, 빈곤, 갈망…이런 것들 속에서 나의 머리 속에서 반듯이 선을 그어주는 ‘타르코프스키의 순교 일기’(두레 발행)라는 책이 있다.
그의 일기는 절망과 투쟁, 회상과내적인 독백, 현재와 장래의 계획들로 꽉 짜여 있다.
인간 세상에서 정신적인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에 투쟁으로 맞섰던 한 예술가의 처절한 기록서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사회에 참여한 한 인간의 고백서이다.
왜 작업을 해야 하는지 끝모를 두려움에 혼란스러울 때 작가의 자세를 정립시켜 주며, 광풍과 같은 허무의 질곡에서 헤맬 때 타르코프스키는 “작가는 재능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진인간”이라고 조용히 알렸다.
삶의 목적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지 가르치고 세속적 악습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준 그의 순결한 영혼은 어둠 속에서 하나의 램프였다.
염성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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