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조그만 차이에서 더 아름다울 수 있기에 한층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서울 광화문과 동대문,경주 첨성대, 독립기념관 등의 밤을 환히 밝히는 조명에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빛이 만들어내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필립스의 기업가치 이념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지난 한해에만 1,900여건(총 6만 여건)의 기술특허를 낼 만큼 필립스의 ‘더 나은 삶의 질을 만드는(Let’smake things better)’ 진지한 노력은 각별하다.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는 국내 축구 경기장 10곳 중 7곳의 조명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필립스는 100년 이상 기술력이 축적된 세계 최고의 조명회사다. 전기면도기에서부터 대형 벽걸이(PDP) TV와 DVD플레이어 등 첨단 디지털제품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선 가전기기 업체로 더 친근하다.
실제 필립스의 사업영역은 반도체와 전자부품, 컴퓨터 모니터, 의료ㆍ통신기기 등 광범위하다. 그러나 필립스의 기술집약적 전통과 명성이 국내에서 빛을 발하기까지는 10년이란 격변과 진통의 기간이 필요했다.
내년으로 꼭 10년째 대표이사 직을 맡게 되는 ㈜필립스전자의 신박제(申博濟ㆍ57)사장은 26년간 한 직장에서만 잔뼈가 굵은 골수 필립스 세일즈맨 출신. 대학원을 졸업하고 KIST에서 연구활동 중이던 신사장은 필립스의 저항콘덴서 등 전자부품을 국내 전자 업체들에 납품하는 영업직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외국제품에 대해 저항감이 커 국내 업체의 문전박대를 받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고난과 좌절로 점철됐던 신사장의 첫 영업활동은 후일 ‘불가능은 없다’는 사내 신화를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한 일본상사에 콘덴서를 납품하기위해 경남 마산까지 매일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일을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엔 문전박대하던 경비원에서부터 사장에 이르기까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지독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며 4년 만에 이 업체로부터 납품주문을 받는 쾌거를 올렸다. 이때부터 그는 전자부품과 반도체 등 필립스의 간판 영업맨으로 승승장구 했다.
필립스는 창립100주년을 눈앞에 둔 1990년, 위기를 맞았다. 적자25억 달러라는 참담한 실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신사장은“필립스 전체 인원의 20%가 넘는 4만5,000명이 정리해고 되는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감량경영, 조직 재정비 등을 통해 사업 재구축을 추진하는 ‘센추리온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다. 신 사장도 10여년간 해오던 체력단련(웨이트 리프팅)도 포기하고 일에 매달렸다.
한국인으론 처음 필립스전자 사장에 취임한 신사장은 급신장 정책을 주도했다. 인원은 그대로 유지한 채 매출을 극대화해 나갔다. 수출 대 내수 비중도 좁혀 수출 중심의 구조로 개선했다. 외환위기를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97년 초 모든 은행과의 거래를 1년간 고정환율(당시 달러 당 850원을 900원으로)로 묶는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했다.
이를 계기로 필립스전자는 4년 만에 매출 5억4,500만 달러를 기록, 취임 당시보다 5배 이상의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신사장은 이를 근거로 네덜란드 본사 회장을 설득했고 국내 LCD사업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냈다. LG전자와의 16억 달러에 이르는 국내 LCD 합작사업이 바로 이때 성사됐다.
바쁜 기업경영 속에서도 대한하키협회장직을 맡아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신 사장은 “필립스의 다양한 첨단제품과 시스템을 국내고객에게 제공할 뿐 아니라 국내 생산 전자부품과 완제품을 세계로 수출해 국내 전자 산업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박제 필립스전자 사장은 “고객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업의 끊임없는 노력은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열정과 같다”고 말했다./오대근기자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어떤 회사
필립스는 1891년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창업한 이래 세계 최초로 아날로그 카세트 시스템 발명에 이어 컴팩트 디스크(CD)를 발명하는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1만 여개의 발명품과 6만5,000개의 특허권을 보유한 디지털 미디어 개발의 선두 기업이다.
전세계 60여 개국의 현지법인에서 27만 여명의 종업원들이근무하고 있으며 25개국에 267개의 생산기지와 150개국에 판매 및 서비스 조직을 두고 있다.
주요 사업영역은 반도체, 전자부품과 의료장비,TV 등 일반 가전제품, 소형가전제품, 조명분야 등 6개 분야로 세계 10대 컴퓨터 업체 중 5곳은 필립스 모니터를 사용할 정도. 지난 해 매출규모는 349억 달러.
국내에선 1960년대 임시사무소 형태로 첫 진출한 필립스는 76년 현지법인인 ㈜필립스전자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1999년 첨단 기술 분야인 TFT-LCD분야에16억 달러를 투자해 LG 필립스 LCD를 설립했고 지난해엔 디스플레이 분야에 또 11억 달러를 투자했다.
현재직원은 260명. 지난 해 매출규모는 1,918억9,800만원, 수출은 149억7,400만원.
■매니지먼트 키워드
▽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영이란 투명한 절차와 대화가 그 첫 걸음이다”
1993년 한국인으론 처음 대표이사 직을 맡게 된 신 사장은 첫 해부터 난관에부딪쳤다. 그간 산적했던 노사간의 갈등이 마침내 수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노조측은 화장실에 비치된 화장지의 품질까지 문제로 제기할 만큼 격앙된 분위기였다.
신사장은 우선 사무실 벽에 대형 백지를 붙여 직원들이 생각하는 회사 경영방침의 문제점들을 공개적으로 하나씩 적어줄 것을 요청했다. 200여 가지의 고충사항이 벽보에 붙었다. 그는 우선적으로 고쳐야 할 13개 항목을 정해 노조원 중에서 각 항목별로 문제해결을 전담할 고충처리위원 13명을 선정하게 했다.
그리고 1년간 이들과 꾸준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서 12개 항목에 대한 노조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신 사장은“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영이란 투명성과 대화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든 항상 ‘불가능하다’는 마음의 벽부터 허물어라”
사내에서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있는 신사장은 ‘진인사대천명’이란 그의 인생관처럼 항상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이 같은 그의 격려에는 회사와 경영자에 대한 직원들의 믿음과 신뢰성이 전제돼야 한다.사업의 위기관리 차원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따르기 마련. 그러나 영업현장에서 26년간 뛰어온 신사장으로선 “위기가곧 기회”라는 점을 직원들에게 먼저 주지시킨다.
그리고 철저히 사업부문별로 그 고유권한과 관리체계를 존중해 줄 뿐이다. 신사장은 “불가능하다는 우려감은 결국 책임을 자신 스스로 짊어질 것인가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고객만족을 위한 노력은 곧 서비스에 달려있다”
가전업체로의 기업이미지가 강한 필립스의 강점은 두말할 것 없이 A/S 서비스다. 서울 남산 본사를 방문하면 1층 대형 리셉션 데스크가 눈길을 끈다. 고객 콜 서비스 센터가 바로 리셉션 데스크 자리에 위치해 있을 만큼 서비스정신이야말로 필립스의 얼굴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신사장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이라도 이를 사용하는 고객의 불평과 불만이 많아지면 자연히 제품을 외면하게 된다”며 “필립스는 직원을 뽑을 때 학력이나 경력보단 서비스 정신에 대한 성실도에 큰 무게를 둔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
출생=1944년 경남 창녕
학력=경희대 전자공학 졸/ 연세대 전자공학(1974) 석사/미국 워튼경영대학원 AMP
경력=㈜필립스전자 입사(75)ㆍ대표이사 사장(93.7~현재)ㆍLG필립스LCD 부회장/대한핸드볼협회 회장 (95~97)ㆍ애틀랜타 올림픽 선수단장(96.5)ㆍ현재 대한하키협회 회장(26ㆍ27대)ㆍ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ㆍ아시아하키연맹(AHF)부회장ㆍ국제하키연맹(FIH) 집행위원
취미=스쿠버다이빙ㆍ골프(핸디캡 12)
성격=리더십과 추진력이 강한 반면 성격이 다소 급한 편이라는 것이 주변의 평가
가족=영문학을 전공한 부인과 1남1녀
이메일 b.j.shin @Phili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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