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끼리 하는 말이 하나 있다.한 출입처에 오래 나가다 보면 그 출입처 사람들을 닮는다는 것이다.
기자라면 분명 독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아야 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외근을 하는 기자라면 누구나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고 한다.
나도 기자이기에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1983년 10월부터 무려 7년여 동안 검찰을 출입하면서 '검찰맨'이라는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검찰청 출입을 그만 둔 뒤에도 검찰과 관련된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검사들과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절친한 검찰 간부들도, 검사 친구도 많고 또 그들로부터 '반(半)검사'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근20년 동안 그래왔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요즘 검찰에 몸담고 있는 지인(知人)들로부터"서운하다", "변했다"는 등의 소리를 자주 듣는다.
지난 9월 본보가 '이용호 게이트'를 특종보도한 이후 최근의 '김은성 국정원 차장의 진승현 게이트 개입'에 이르기까지 특종기사가 나갈 때마다 그런 말이 들려왔다.
사건의 고비마다 검찰의 '아픈 곳'이 드러나고 또 신문은 그것을 보도하게 되니 검사들로서는 기분이 편치 않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이해가 간다.
오늘은 오랜 세월 '애정'을 가지고 검찰을 지켜본 '반검사'의 얘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검찰청 출입을 시작한 이래 독재적 정치권력이 물러나면서 검찰과 관련된 화두(話頭)들 가운데 '검찰 중립'이 단연 첫번째로 꼽혀왔다.
비슷한 시기에 법원을 향해서는 '사법권 독립'이라는주문이 강렬했으나 어느 새 그 말은 슬그머니 잦아들었고 '검찰중립'쪽은 여전히 시끄럽다. 왜 그럴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치권이 제시하고 있는 주장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특별검사제'등 두 가지였다.
YS와 DJ가 모두 야당이었을 때 그 야당은 인사청문회등의 관철을 목소리 높여 말했다.
1993년 YS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YS는 자신이 해온 주장을 외면했고 DJ쪽 사람들이 똑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1998년 DJ가 청와대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DJ가 자신의 말을 번복했고 YS가 만든 당의 후손인 한나라당이 옛날의 주장을 다시 되뇌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옷로비 등 의혹사건에서 일시적으로 특검제가 도입됐던 것 뿐이다.
야당이 되면 인사청문회 등을 주장하고 여당이 되면 '나 몰라라'하는 것이 지난 세월의 경험이다. 왜 그럴까.
검찰은 시종일관 불가(不可)의 입장을 지켜왔다. 법률적 측면에서 당연할 수도 있겠으나 반드시 "일관성 있다"며 칭찬할 일만은 아닌 듯 하다.
여야가 입장이 바뀔 때마다 말을 번복하는 사이에 검찰은 '항상 여당의 편에 서는 조직'으로 인상지워졌다.
검찰도 행정부에 속하는 기관이어서 법원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정파가 정권을 잡든 그쪽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그쪽 사람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비쳐져온 것은 분명 문제다.
나는 오늘날 검찰이 처한 어려움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적지않은 검사들이 "어떻게 하면 검찰이 살 수 있겠느냐"고 물어오곤 하는데 해답은 이미 그들도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어느 정권이들어서든지 검찰이 권력을 쥔 사람들과 가깝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없어진다면 그때 '검찰 중립'이란말도 없어질 것이다.
제도를 바꾸든 안 바꾸든, 사람들 바꾸든 안 바꾸든 그 일을 할 사람은 검사들 자신이다.
정권교체의 역사와 경험이 보다 축적되면 언젠가는 자연히 그리 될지는 모르지만 그날을 앞당길 수 있는 사람들도 역시 검사들이다.
나는 여전히 '검찰맨'이다. 그 일을 위해 나선다면 기꺼이 도울 의사가 있다.
신재민 사회부장
jmnew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