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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꽃섬' 그 섬에 가면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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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꽃섬' 그 섬에 가면 희망이 보인다

입력
2001.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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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꽃섬’은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상처와 슬픔을 잊게 해주는 땅’이란 가슴이 터질듯 자맥질을 하고 나서 그 고통에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살아가는 제주도 해녀들에게 ‘구원의 파라다이스’로 보이는 이어도처럼 신기루일 뿐이다.

환상은 언제나 유혹적이다. 그 유혹은 현실의 상처가 깊을수록, 그 현실을 벗어날수 있는 날개가 부러진 인간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들도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기어코 ‘꽃섬’을 찾아가야 한다.

이 세상 어느 곳도 상처를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망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살아가야 할 ‘희망’의 실체를 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이니까.

그래서 로드무비인 ‘꽃섬’(감독 송일곤)은 목적지가 목표가 아니다. 그곳으로 가는 과정이 목적인지도 모른다.

낙태한 10대 여고생 혜나(김혜나)도, 암으로 혀를 잘라내 ‘말’을 잃어버리자 자살을 시도했던 20대 뮤지컬 가수 유진(임유진)도, 딸의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매춘을 하다 발각돼 쫓겨난 옥남(서주희)도 그랬다.

우연히 만나 눈밭을 헤치고, 구걸하다시피 남의 차를 타고서라도 그들은 ‘꽃섬’으로 간다.

땅끝 남해까지 가는 동안에도 그들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사이 혜나가 얻은 것은 자기를 버렸지만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얼굴도 모르는 엄마의 죽음이란 또 하나의 상처였다.

송일곤 감독은 그 모든 상처들이 우리가 안고 있는 폭력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다. 어느새 우리 사회구조와 가치관, 삶 속에 다양하고 깊숙하게 스며든 폭력들.

폭행당한 아내에 의해 살해당한 남자의 시신을 싣고 가는 트럭 운전기사처럼 그것을 너무나 무덤덤하게, 남의 일처럼 받아들이는 현실을 직시한다.

1999년 칸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 대상작인 ‘소풍’에서는 끔찍한 가족 동반자살이었고, 또 다른 단편 ‘간과 감자’에서는 충격적인 신체 훼손이었다.

‘꽃섬’은 그런 냉정한 태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고발성보다는 연민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

꽃이 모두 져버린 황랑한 겨울 ‘꽃섬’은 그들의 상처를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함으로 섬은 아무 것도 주지 못한다.

타인의 상처에 대한 연민이 자신의 상처까지 어루만질 때 그들은 그토록 원하던 ‘꽃섬’을 발견한다.

옥남의 한없는 모성애적 사랑과 긴 여정에서 만난 상처 입은 영혼들의 눈물과 따스한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에 버림받은 인간들의 ‘희망’이다.

‘꽃섬’은 길 위에도, 바다에도 있지 않았다. 그들 자신들의 가슴 속에 있었다.

여행은 일종의 초혼제였다. ‘꽃섬’은 긴 호흡과 상징적 이미지로 그것들을 쫓아간다.

디지털카메라의 장점인 근접촬영으로 사실감과 인물들의 내면에 깊이 다가가면서도 필름 못지않은 색채와 편안한 구도를 얻어냈다.

그러나 누구도 옥남의 모성애의 근원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혜나와 유진에 대한 그의 사랑이 자신의 깊은 상처와 딸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영화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 때문에 만약 그녀가 ‘바보스러울 정도로 타고난 착한 여자’로 비춰진다면?

‘꽃섬’이 이미지로 끌어들인 혜나의 부러진 천사의 날개와 유진의 뮤직박스, 상업적 재미(웃음)를 위해 옥남의 시간을 대신해 너무 많이 차지해 버린 3류 밴드까지 상투적으로 보이게 만들 것이다.

어쩌면 ‘구원’이란 주제까지도. 다행히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관객이 뽑은 ‘최고 신인 감독상’,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24일 개봉.

/이대현기자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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