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경험 중시 처사형' 퇴계 '이론 중시 참여형'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인 남명(南冥) 조 식(曺植ㆍ1501~1570)과 퇴계(退溪) 이 황(李滉ㆍ1501~1570)은 치열한 학문적 라이벌이었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흠모하는 인간적 동지이기도 했다.
남명학회회장 이남영 서울대철학과교수 주최로 최근 서울대에서 열린 ‘남명조식선생 탄신 500주년기념국제학술대회’에서 이광호 연세대 교수는 두 사람을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이교수는 “남명과 퇴계는 학문적 입장차 때문에 비판하고 논쟁했지만 서로의 고상한 인격을 인정하고 아끼는 대가의 풍모를 잃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두 대가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남명이 때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 ‘처사형 지식인’이라면 퇴계는 학문의 높은 수양을 통한 참여를 목표로 하는 ‘참여형 지식인’이었다.
남명이 현실속에서의 삶의 경험을 중시하는 ‘실천적 교양인’이었다면 퇴계는 완벽한 이론으로 치세(治世)의 틀을 구축하는 ‘이론적 교양인’이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남명은 퇴계를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논하여 명성을 훔치고 세상을 속이고 있다”며 비판했고 퇴계는 남명을 “유학의 진리보다는 노장의 은둔적 기상을 지향하고 노장의 도를 이상으로 삼는 인물”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면서도 퇴계는 “남명과는 정신으로 사귄지 오래 되었고 지금 남쪽지방의 고사(高士)로는 유독이, 한사람만을 꼽고 있다”고 신뢰감을 나타냈고, 남명은 “평생 정신으로만 사귀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질 못했다. 아, 이 세상에 머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결국 정신적 사귐으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라며 퇴계에 대한 흠모의 정을 표했다.
두사람의 가장 비극적인 차이는 남명학파는 완전히 몰락한 반면 퇴계학파는 번성했다는 점이다.
이성무 국사편찬 위원장은 학술대회 기조강연을 통해 “남명사상은 북인정권의 몰락과 함께 영향력을 잃었으며 그에 따라 퇴계학파 등에 의한 순정주자학의 시대가 열렸다”며 “조선은이 같은 주자학의독 선화와 교조화로 망했다”고 지적했다.
주교조화는 사상의 다양성을 폐쇄시키고 극단적 보수화로 치닫게 했다는것이 그의 설명이다.
"상도(上道)는이황이 있어 학문을 숭상하고 하도(下道)는 조식이 있어 절의를 숭상한다”
선조실록는 윤승훈이 있어 절의지적과 같이 사상과 학문의 조화로운 발전이 남명학파의 몰락과 함께사라지고 만것이다 .
오늘날 두 거목의 학문적 차이에 대한 연구가 왜 중요한지를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남명을 주로 조명했지만 두 학자의 탄생 500주년을 정리하는 의미있는 행사였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정학술대회에서는 이밖에 ‘천인(天人)관계에 대한 남명 조식의 사상’(윤사순 고려대 교수), ‘남명 역학(易學) 사상의 특징’(남명진 충남대 교수), ‘남명의 심(心) 개념과 신명사도(神明舍圖)의 구조’(금장태 서울대 교수) 등 논문 8편이 발표됐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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