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1년여나 남았는데도 여야 정치권이 벌써부터 표를 의식, 주요 정책의 방향을 왜곡하고 중요한 결정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에 대해 여야는 조정과 중재 역할을 포기한 채 눈치보기에 급급,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추곡가 인하 문제
여야는 ‘농민표’를 의식, 중립적인 기구인 양곡유통위원회의 추곡수매가 인하 건의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19일 긴급 당정협의까지 열어 정부에 이 건의를 받아들이지 말도록 압력을 넣었다. 한나라당도 국회 심의과정에서 반대할 방침임을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학자와정부 관계자들은 이 같은 정치권의 행태를 “눈 앞의 표만을 의식한 후진적 대응”이라고 비판한다. “뉴 라운드 출범으로 농산물시장 개방 확대가 기정사실화한 마당에 쌀 가격 지지정책으로 농업을 보호하려 해선 안 된다”는 견해가 주류다.
“오히려 정치권이 할 일은 추곡수매가 인하의 불가피성을 농민에게설명하고 농업 경쟁력 강화와 농가 보호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숙고하는 것”이라는 주장들이다.
이화여대 유장희(柳莊熙) 국제대학원장은 “여야는 양곡유통위가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잘 살핀 다음 농민들과 심층 토론을 갖고 농촌의 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 교원정년 연장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총무는 20일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총무에게 교원정년을 63세로 연장하려는 법개정 처리를 늦출 것을 제안했다. 여야가 20일 공청회 후 21일 표결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찬반의견이 팽팽해 표결로 처리하기엔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미경(李美卿) 제3정조위원장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며 현행유지 입장을 고수했지만 표결에서 지고 거부권까지 행사하기란 부담스럽다. 연장을 주장한 한나라당도 교원 지지에 못지않게 학부모등의 반대 의견이 당 홈페이지 등에 쏟아지자 은근히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 특소세 인하
여야가 19일 국회 재경위에서 신경전을 벌인 특소세 인하는 ‘시장 혼란’에 밀려 처리됐다.
소득세,법인세와 연계처리를 주장했던 한나라당은 특소세 인하방침이 미리 알려지는 바람에 구매취소 등 혼란이 심해진데다,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이날 경제5단체장간담회에서 “오늘 중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자 특소세 별도처리에 합의해줬다.
그러나 특소세 인하는 특정 업계와 일부 소비층의 이해를 대변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그 동안 감세정책보다 재정정책을 지지해 온 민주당은 4,000억원의 감세효과를 내는 특소세 인하에는 오히려 앞장서면서 ‘내수 진작’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全聖寅) 교수는 “특소세 인하로 승용차, 대형 TV 등 특정품목의 소비는 진작되겠지만 전반적인 경기부양에 얼마나 도움될지는의문”이라고 말했다.
■ 건강보험재정 통합
건강보험재정 통합 문제도 통합-분리의 양론 사이에서 눈치보기가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재정분리를 당론으로 확정한 데 대해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분리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통합시기를 연기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김태홍(金泰弘) 의원은 재정통합시기를 5년 연기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고 이상수 총무도 “통합준비가 덜 돼 있다면 시기를 늦추는 것을여야가 논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재정통합이 이미 상당히 진행됐음에도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이 낮아 직장보험 가입자가 피해를 본다”는분리론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탓이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김희원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