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생소한 학문, 기호학에서는 미술작품의 '제목'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그러한 시도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끈다.하나는 미술관의 관람객을 두 부류, 곧 제목을 적은 팻말부터 보는 이와 그림 먼저 보는 이로 나누고 그 이유를 명쾌하게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제목부터 읽는 나 같은 관람객은 정보부터 얻으려는 사람이다.
또, 작가가 "이렇게 이해해보시오"라고 제목으로 내린 인지명령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그림부터 보는 이는 작품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제목을 알면 이해가 얼룩진다고 여기는 이들 중에는 전문가가 많다.
기호학자들의 또 하나 흥미로운 연구는 그렇다면 제목부터 찾는 태도는 부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답을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는 데 있다.
제목은 작품과 통합되어 상위의 작품을 이루니, 제목도 고려해야 옳다는 것이다.
문학과 언어학에서 제목을 연구해온 역사는 길다. 문학에서는 문호 괴테의 '친화력'이라는 소설제목을 두고 연구해온 역사가 있다.
주인공 이름을 따서, 주인공의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소설의 테마를 이끄는 중심행위를 집어냄으로써 제목을 삼던 이전의 소설제목과 달리 괴테의 '친화력'은 당시에는 낯설었던 과학의 개념어이다. 독자에게 주인공들의 관념의 추이를 살필 것을 권한 제목이라는 등의 연구가 있어왔다.
90년대 이후 언어학에서의 활발한 제목연구는 '제목의 이데올로기(titrology)'라는 용어에서 엿볼 수 있다.
언론학에서 제목연구는 활발하지 않다. 제목을 주제로 쓴 책을 두어 권 이상 본 기억이 없다.
매일 기사제목을 다는 일을 하는 신문기업에서는 기사제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대다수 신문독자는 '제목중심으로 읽는 독자(headline reader)'라는 조사가 발표되면서 기사의 핵심내용과 중요도를 일러주는 제목, 독자의 주의를 최대한 끌어 기사를 읽게 만드는 상업적인 제목 달기를 다중시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 신문들은 제목에 수 많은 따옴표를 사용한다.
미국신문, 영국신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최근 며칠간의 신문을 펴놓고 특히 정치면을 보면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어지럽다.
위기의 국정원 최고의 정보조직에 왜 이런 일이…"특정人脈 私益 챙긴탓" / 野 "권력기관 모두 부패…國政 파탄" / 국정원ㆍ검찰 정치활동 관련예산 한나라 "전액 삭감하겠다"
겹따옴표는 한글맞춤법을 따르나, 인터넷사이트(http://ipcp.edunet4u.net~koreannote/)(http://webster.comment.edu)의 설명을 따르나 분명히 남의 말을 인용할 때 쓰는 부호이다.
특정인물, 특정정당의 말을 인용한 제목으로 진위비판을 면하고 기사읽기의 방향을 안내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따옴표의 의미를 읽을 것을 권한다.
/ 박금자 편집위원 park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