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홍윤오기자 제3信…목숨건 카불취재17일밤부터 한국기자로 처음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취재한 한국일보 홍윤오 기자는 19일 파키스탄과의 국경 검문소인 토르크햄으로 향했다.
19일 홍 기자가 왕복한 카불 동쪽 90km 지점 도로상에서는 파키스탄에서 함께 아프간으로 들어왔던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기자 등 4명이 살해되기도 했다.다음은 홍 기자의 제3신.
18일 아침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선 생동감이 느껴졌다. 청명한 초겨울의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다.
햇빛은 매연과 흙먼지로 뒤덮인 회색빛 시가지를 잔인할 만큼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거리는 차들로 뒤엉키고 시장은 생필품과 먹거리들을 팔러 나온 노점상들과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손에 커다란 지폐뭉치를 들고 장을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아프가니는 지금 파키스탄 루피에 비해 500대 1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값어치가 떨어졌다. 하지만 탈레반이 떠난 뒤에는 환율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화폐가치도 나날이 오르고 있는 추세다.
시민들은 입을 열면 과거의 지배자를 욕하기 바쁘다.
시장거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예드 무하마차(45)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낮 폭격을 해대는 탓에 사람 사는 곳같지가 않았지만 탈레반이 퇴각한 뒤 모든 것이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이 드나드는 호텔의 종업원 돈 바시르(16)는 “탈레반 치하에서는 마치 머슴을 사는 기분이었다”면서 “수염도 깎지 못하고, 음악도 못 듣고, 학교는 있지만 가봐야 선생님도 책도 없어서 갈 필요가 없었다”고 늘어놓았다.
불과 한 달 전 카불을 찾았던 CNN 등 서방기자들에게 총과 칼을 휘두르며 “미국과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외쳤던 시민들이다.
가장 큰 걱정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타지크족 출신 하급 장교라고 밝힌 아가 쉬린(36)은 북부동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차기 새정부에 온건 탈레반도 포함시키고 아프간의 모든 민족, 모든 정파가 참여해야 싸움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나이보다 20년은 족히 늙어 보이는 그는 “16세 때부터 소련에 맞서 무자헤딘으로 나선 이래 20년 동안 전쟁만 하며 살았다”면서 턱을 스쳐간 총알에 의해 사라진 어금니 부위를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저녁 6시. 밤이 깃들면서 상점들이 모두 철시를 시작, 7시엔 거리가 거의 암흑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인적이 끊긴 컴컴한 밤거리를 보고서야 이 곳이 아직 전쟁 중이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아프간 전역은 이틀째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에 들어가 있다. 오후 5시께가 되자 시민들이 잠깐 기도를 하는가 싶더니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일제히 먹기 시작했다.
금식후 저녁에 먹는 첫 식사인 이프타르였다.
카불로 들어서는 도로 입구 옆 담벼락에는 곳곳에 총탄, 포탄자국이 선명했다. 간혹 도로를 달리는 북부동맹 전차들의 모습도 목격됐다.
초입에 위치한 카불 라디오 방송국은 멀쩡해 보였고 카불 치안본부, 무자헤딘 훈련캠프 등 군부대 같은 건물들이 계속 이어졌다.
안내원은 아랍양식의 황토벽돌건물을 가리키며 “저곳이 압둘 하크 장군이 처형된 곳”이라고 귀띔했다.
시내에는 아파트들도 있었다. 우리나라 1970년대쯤의 낡은 4~5층 아파트들이 시내 곳곳에 늘어서 있다. 컨테이너들을 죽 세워놓고 공동주택으로 사용하는 곳도 보였다.
“앞으로 외세만 개입하지 않으면 아프간에 평화가 찾아오겠지만 이 틈을 타고 이나라 저나라가 달려들면 다시 전쟁이 일어나겠지요.” 교수가 꿈이라는 아마니 칸(31)은 국제사회에 조각배처럼 내던져진 아프간의 운명을 걱정했다.
카불=홍윤오기자
yo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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