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문화가 바뀌고 있다. 밤의 찜질방은 더 이상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 공간이 아니다. 술 취한 직장인들이 새벽잠을 청하는시내 한복판의 사우나와도 다르다.찜질방의 밤이 젊어지고 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찜질방이 깊은밤 색다른 장소를 찾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20대의 밤
16일 오전 1시. 서울 반포동 H찜질방. 저녁 시간부터 자리를 차지한 동네 사람들과 밤 늦은 시간 찾아 온 젊은이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눈으로 쭉 훑어보니 200명이 넘는다. 깊은 밤시간,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찜질방에 있는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다니다 귀국한 곽란(20ㆍ여)씨. 1주일에 한 번은 찜질방을 찾는 그는 오늘은 두 명의 친구를 대동했다.“
처음에는 찜질방을 가면 살이 빠진다고 해서 다녔다. 몇 번 가다 보니 구속이 없는 자유로움이 더 좋아졌다. 이제는 술을 한 잔 마시고 나면 오는 2차 코스가 됐다.”
1시간 30분마다 달궈져 나오는 불가마. 종업원의 외침. “불가마 나옵니다. 들어오세요.” 휴게실에 앉아 쉬고 있던 사람들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하나 둘씩 찜질방 안으로 모여든다.
발바닥이 뜨겁다. 돌이 아닌 왕골 돗자리로 만들어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불가마 앞에 선 채로 온몸을 흔들며 땀을 빼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이승아(28ㆍ여)씨는 불가마 애찬론자. “열기 자체가 온 몸에 쌓인 노폐물을 뽑아낸다.
습기가 없어 땀이 더 빨리 빠지는 것 같다. 지난 추석때에도 차례를 지낸 뒤 동서끼리 새벽 4시까지 찜질방에 있었다. 옷들을 한꺼풀 벗은 때문인지 이곳에 오면 조금 더 솔직해진다.”
#30대의 또다른 밤
대부분의 찜질방은 남녀 구분이 없다. 카운터에서 3,000원을 내고 하얀 반바지와 반소매 티셔츠를 빌려 입고 들어가면 그만이다.여기저기 섞여서 누워 자는 ‘남과 여’의 모습이 이채롭다.
연인 사이라는 조요환(31), 윤소영(30ㆍ여)씨는 불가마가 나오자 서로 맛사지를 시작했다. 땀을 더 빨리 빼고 경직된 근육을풀기 위해서다. 윤씨의 설명. “바닥에 누워 뒹굴어도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지 않는다.
속옷 차림의 사람들이 남녀 구분 없이 섞여있는 공간이 이곳 빼놓고 어디가 있느냐.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친구와 함께 오기에좋은 곳이다.”
16일 오후 11시 서울 부암동 N찜질방. 회사원 차상철(35)씨는 회식을 마치고 이곳을 찾았다. 차씨는 “일반 사우나는 하고 나오는 순간만 시원하다.
하지만 불가마가 있는 곳은 살결이 맨질맨질해지면서 술기운도 함께 사라진다. 한 숨 자고 난 뒤 여기서 출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장인의 신풍속도다.
#그리고 불가마가 좋은 이유
게르마늄, 맥반석, 옥, 황토 등 불가마가 나오는 찜질방 안에는 몸에 좋다는 온갖 천연석들이 가득하다. 불가마의 온도는 1,000도 이상.
이 열이 돌을 달군 뒤 방사열을 내뿜기 때문에 원적외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장시간 노출로 화상을 입는 피해를 막기위해 10분을 넘기면 안 된다.
찜질방이 인기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먹거리. 미역국, 수제비 등 간단한 식사에서 시작해 식혜와 냉커피, 삶은 달걀도 인기다. 회사원 김지은(31ㆍ여)씨는 “땀을 빼기 위해 얼음을 띄운 커피를 즐겨 마신다.
출출해지면 찹쌀 옹심이를 넣은 미역국으로 배를 채운다. 찜질방에서 먹는 음식들은 바깥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이색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에게 방은 가족의 생활 공간이자 사람을 만나는 안전한 장소였다. 농경사회의 사랑방이 산업화시대의 다방으로,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노래방과 PC방으로 진화했다면 이제는 찜질방이다.
연인과 함께,동료와 함께 ‘건전한’ 밤을 보내는 곳. 이제는 몸과 마음의 자유로움이 찜질방의 열기 속에서 되살아난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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