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거리는 사람 구경 "꼭 쇼핑하러만 가나요"밤이 깊어 가면 동대문시장 일대는 두 얼굴을 가진 공간이 된다. 셔터가 굳게 내려진 청계천변 상가와, 화려한 조명 속에서 사람들이 넘쳐 나는 동대문운동장 맞은 편 의류상가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오후 10시. 종로6가에서 버스를 내려 동대문 밀리오레로 가는 길은 스잔하다. 오후 7시면 대부분 철시하는 상점의 셔터는 꽉 다문 입술처럼 냉정한 모습이다. 길가에 널린 쓰레기만이 사람들을 맞는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육교를 넘어 밀리오레, 두타 등의 상가가 다가오자 다시 거리가 환해지기 시작한다. 17일 토요일은 서울 시내 고등학교 3학년들의 기말고사가 끝난 날이었다. 평소보다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서울 K고 3학년생인 이모(18)군. “수능에 이어 기말고사까지 망쳤다. 너무 답답해서 찾아왔다. 옷을 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북적거리는 사람들 모습이 보고 싶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온풍이 확 끼쳐온다. 갑작스런 사람의 물결에 이리저리 떠밀리기 시작한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지만 숙녀복,남성복, 잡화점 할 것 없이 인산인해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보다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구두 한 켤레를 고르고 카드를 내밀자 조금 전 흥정에서 깎아준 돈이 사라진다.
이곳의 상인들은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일을 한다. 월요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휴일도 없다.
밀리오레 6층에서 신발류를판매하는 40대 박연옥 사장은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느냐. 물건을 싸게 많이 파는 박리다매식이다 보니 카드 수수료가 부담된다. 그래서 현금을 내는 손님에게만 값을 깎아 준다”고 말한다.
지하1층 패스트푸드점 역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오전 4시까지 영업을 한다. 최근에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부족해 배달업무는 그만 뒀다. 건물 옆에 자리한 미용실, 카페, PC방, 분식집 역시 24시간 영업 중. 이곳만의 색다른 밤 문화다.
1만 5,000원짜리 손미싱기와 1,000원 하는 접착용 테이프를 늘어 놓은 노점상. 길을 나서면 다시 그들과 마주친다.
수십층짜리 의류상가에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몫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먹고 살자. 하나만 사달라.”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까만 밤 하늘에 퍼져 나간다. 하지만 울림이 없다. 쓸쓸한 초겨울의 새벽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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