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야당(執權野黨)', '야정회의(野政會義).'요즘 경제부처가 몰려있는 과천 정부청사 주변에서는 새로운 정국의 역학구도를 상징하는 이런 신조어들이 유행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재보선 패배이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국회 주도권이 다수 야당인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면서 '한나라당 동의 없이는 어떤 정책도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집권야당'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힘'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19일 저녁 정부는 다음날 오전으로 예정됐던 대통령 주재 경제장관간담회를 황급히 취소해야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경제장관간담회에 상관 없이 장관들의 국회 출석을 요구해 청와대측이 회의를 연기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행사가 야당 요구로 무산된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이날 국회에서는 정부ㆍ여당이 한나라당에 거의 사정하다시피 해 특별소비세율 인하안을 가까스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또 21일에는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30대그룹 지정제도 등 재벌규제 완화와 관련, 여당이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한나라당과 단독으로 '야정회의'를 열 예정이다.
한나라당에게는 이 모두가 그야말로 신바람나는 상황 변화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 관료들은 한나라당이 국가 부채가 1,000조원이라는 과장된 주장을 하고, 5조500억원의 1차 추경을 3개월이나 지연시켜 정책의 타이밍을 잃게 한 경험을 떠올리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제 경제정책 결정의 주요 당사자로 등장한 만큼 권한에 걸맞는 책임감 있는 자세를 기대한다.
/조철환 경제부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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