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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세상] (125)완벽한 순간,무너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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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세상] (125)완벽한 순간,무너지기 쉽다

입력
200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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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국에 ‘기기(器)’와 ‘박만(撲滿)’이라는 그릇이 있었다고 한다. 기기는 속이 비면 기울어지고 물을 반쯤 담으면 똑바로 서며 가득 담으면 넘어져서 쏟아지는 그릇이다. 박만은 나무나 흙으로만든 벙어리 저금통인데, 위에 좁은 구멍이 하나 있어 그리로 돈을 넣어 모아 두었다가 꽉 차면 깨뜨려 돈을 쓰기 위한 것이다.명나라 때 홍자성(洪自誠)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은 두 그릇을 예로 들어 ‘가득 참’의 폐해를 가르치고 있다. 즉 기기는 가득 차면 엎질러지고 박만은 가득 차면 깨뜨려지고 비면 깨어짐을 면해 온전할 수 있는 이치를 들어 ‘군자는 차라리 무(無)에 살지언정 유(有)에 살지 않으며, 이지러진 곳에 처할지언정 오롯한 곳에 처하지 않는다’고 했다.

골퍼들은 완벽함을 추구한다. 완벽한 스윙,거리와 방향이 맞는 샷, 그리고 흡족한 스코어를 꿈꾸며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정작 완벽함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동안의꿈은 여지없이 부서지고 만다.

구력 10년의 P가 부푼 기대를 갖고 골프장을 찾았다. 80대 중반은 쉽게 치고, 80대 초반도 자주 치지만 번번이 70대 길목에서 주저앉곤 했던 그는 올해 안에 반드시 70대 진입을 목표로 세우고 맹훈련을 해왔다. 나이도 50줄에 접어들어 스코어가 더 이상 개선되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P는 해를 넘기기 전에 한번이라도 70대에 진입하는것을 목표로 세운 것이다. 많은 연습이 주효했는지 샷의 감각이 손으로 느낄 만큼 좋았고 컨디션도 최고였다. 날씨도 쾌청했다. “아무래도 오늘 일낼 것 같애.” P는 동반자들에게 자신감까지 드러내 보였다. 골프장에 도착하기 직전 연습장에서의 샷도 기막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P의 간절한 소망과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오히려 평소보다 못한 스코어를 내고 말았다. 골프를 원망하며 18홀을 떠나는 순간 그 동안 좋은 스코어를 냈던 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전날 술을 마셔 몸 상태가 좋지 않았거나, 긴 여행에서 돌아와 허겁지겁 불려나갔거나, 장기간 골프채를 잡아보지 않고 나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결코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좋은 스코어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화근은 바로 충족이었던 것이다. 좋은 스코어를 낼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생각때문에 욕심과 기대가 가득 차고 대신 겸손과 자제력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골프는 가장 완벽한 상태가 실은 가장 깨어지기쉬운 상태임을 깨닫게 해준다. 기기와 박만이 가득 차면 깨어짐을 면할 수 없듯, 골프의 상황 역시 충족과 완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가질 때 자만과욕심, 긴장 등으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방민준 광고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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