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아들에게 평생 모은 돈을 보내 달라는 장기수의 작은 소망이 분단의 현실 속에 처절하게 부숴졌다.1962년 남파 간첩혐의로 붙잡혀 26년간 복역한 뒤 88년 12월 출소한장기수 진태윤(당시 77세ㆍ전북 전주시 완주군 구이면 출생)씨는 1997년 4월 패혈증으로 숨을 거두면서 북한의 아들에게 돈을 보내 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 돈은 출소 후 고향에서 날품팔이 등을 하면서 모은 2,900여만원이었다.
그가 58년 북한을 떠나올 당시 함경남도 정평균 귀림면 유송리에는 결혼한지 4년 된 아내와의 사이에 둔 2살짜리 외아들 양만군이 있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재산관리인으로 선임된 진봉헌(45) 변호사는 3년6개월동안 진씨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수 차례 진씨의 아들의 생사 확인을 신청했고 통일부에 방북허가신청도 냈다.
그러나 생사확인신청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회신만 받았고 방북신청도 ‘북한의 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 변호사는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판례가 있기 때문에 진씨 아들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상속이 가능했지만 남북의 높은 장벽만 확인한 채 수포로 돌아갔다”며“결국 진씨가 피땀 흘려 모은 돈은 내년 말 국고로 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최수학기자
s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