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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20명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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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20명 한자리에

입력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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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단재 선생의 자부 되는 사람입니다.” “우당 선생의 둘째 아들입니다.”17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우당기념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선생 순국69주기 추모식’을 겸해 열린 기념관 개관식에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시야(是也) 김종진(金宗鎭) 등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싸웠던 민족지사의후손 20여명이 참석해 반갑게 손을 마주 잡았다.

역사학자 이덕일(李德一ㆍ40)씨가 지난 5월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출간한 이후 서로 연락이 닿은 것이 계기가 됐다.

대부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성향이 강한 독립운동가의 자손인 이들은 “극단적인좌우 대립 속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반대했던 아나키스트들은 남과 북 양쪽 모두에서 잊혀졌다”며 “뒤늦게나마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게 돼 다행스럽다”고말했다.

우당의 손자인 이종찬(李鍾贊ㆍ65) 전 국가정보원장은 “조부와 같은 독립지사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 ”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독립운동가 신현상(申鉉商)의 딸 정옥(貞玉ㆍ74)씨도 “지나치게‘햇볕’과 ‘그늘’을 가르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거들었다.

의열단 참모로 활약했던 유자명(柳子明)의 손자인 인상(寅祥ㆍ54)씨는 “할머니는독립운동을 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언제고 소리나지 않는 총으로 할아버지를 쏴버릴 것’이라는 험악한 말씀을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하유(李何有)의 딸 원영(園英ㆍ54)씨는 “아버지 기억은 서너 살까지가 전부지만, 당당하고힘찬 혁명가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독립운동가 김성수(金聖壽)의 아내 최차자(崔次子ㆍ67)씨는 “남편은 일제 당시 감방에서 좁쌀을 주워먹는 등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에도 쇠약해진 몸을 추스리지 못해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참석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옛 얘기와 독립운동 활약상을 풀어내며 “하루 속히 통일된 나라를 보기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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