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켜지자 동숭아트센터소극장 무대에는 한 남루한 가정의 거실이 나타난다.소파 밑에는 인형과 잡동사니가 가득하고 부엌에는 가지런하지 못한 주방 기구들이 잔뜩 쌓인 채돌잔치 준비가 한창인 그런 풍경이다.
극단 작은신화의 ‘돐날’은 이 386세대 가정집에서 일어난 하루 저녁 동안의 서글픈 이야기다.
1980년대 학생운동가였던 남편 지호(임형택)는 무능력한 대학강사가 됐고, 미대 학생이었던 아내 정숙(홍성경)은 아이 둘을 둔 무기력한 전업주부가 됐다. 이들이 둘째 아이의 돌날을 맞아 친구들을 부른 것이다.
친구들 역시 많이 변했다. ‘양키 고 홈’을 외치던 학생운동가 경우(김은석)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인증서를 들먹이며 주방세제를 팔아대고, 부모 잘 만나 놀고 먹는 대학생이었던 성기(서현철)는 잘 나가는 중소기업사장이 됐다.
화투를 치며 흥겨운 술판을 벌이던 이 386세대의 모임은 결국 지호와 정숙의 부부싸움으로 엉망진창이 된다.
연극의 초점은 이들이 왜 이렇게 비루하고 쓸쓸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맞춰져 있다.
학생운동권의 스타였던 지호는 왜 아내 앞에서만 큰 소리 치는 못난 아빠가 됐는지, 꿈 많은 여대생이었던 정숙은 왜 5개월 된 배 속의 셋째 아이를 지우는 비정한 엄마가 됐는지….
이러한 삶의 비극성을 증폭시킨것은 아이의 울음소리였다.
바보 같은 어른들이 악다구니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셰익스피어는 그래서 “아이들이 울면서 태어나는 것은 이 바보 같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화가 나고 슬퍼서 운다”고 한 것이 아닐까.
작품은 이 같은 삶에 대한 해결책이나 탈출구를 섣불리 제시하지 않았다.
오로지 일상적인 대사와 몸짓으로 현실만을 냉담히 보여줄 뿐이다. 하긴 2시간짜리 연극 한 편으로 치료하기에는 젊음을 잃어버린 우리 삶의 상처가 너무 깊지 않겠는가.
12월 5일까지 화ㆍ수ㆍ목 저녁 7시 30분, 금ㆍ토 4시 30분ㆍ7시 30분, 일 3시ㆍ6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김명화 작, 최용훈 연출. (02)764-3380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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