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원에 가는걸 무척이나 좋아한다.외국여행을 할 때면 종종 그곳의 동물원을 찾는다. 아들 녀석도 동물원에 가길 워낙 좋아해서 미국에 살 때에는 아예 동물원 회원이되어 자주 다녔다.
그런 아들이 한국에 온 이후 동물원에 한두번 다녀온 다음별로 가고 싶어하질 않는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불쌍해서 보기 싫다는 것이다.
나는 90년대 중반 처음 귀국하여 동물행동학이나 생태학 같은 과목을 가르칠 때 몇번 학생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 가르칠 때에는 동물 관찰과 실험을 하기 위해 학교 주변의 산과 들을 자주 다녔다.
시골학교에 있을 때는 물론 말할 나위도 없지만 보스턴 시내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버드대학에서 가르칠 때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야생동물들을 보러갈 만한 곳들이 그리 멀지 않았다.
물론 내 강의에는 늘 생생한 동물사진들이 많이 동원되어 이른바 시청각교육의 효과를 조금은 얻고 있지만 정말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을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처음 귀국하여 그런 강의들을 시작하며 어디 학생들을 데리고 갈만한 곳이 없을까 두루 알아보았지만 정말 없어도 너무 없다 싶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끌고 간 곳이 동물원이었다. 고릴라가 갇혀있는 우리 앞에서 그들의 일부다처제 번식구조에 대해 설명해 보았지만, 삶을 포기한 듯한 그들의 눈앞에서 동물행동학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어쭙잖다는 생각이 들어 더이상 동물원에 가지않기로 했다.
구태여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동물원에 가본 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환경운동연합의 생태보전팀이 야생동물 보호와 동물복지 증진을 도모하는 모임인 '하호'의 도움으로 정리해놓은 보고서를 들쳐보노라면 이게 동물원인지 동물병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원래 바다에사는 동물인 잔점박이물범들이 동물원의 예산 부족으로 바닷물이 아닌 민물지하수로 채워진 수조에서 살고 있다.
바닷가에 사는 어린아이가 퍼오기 쉽다고해서 바닷물을 떠다 금붕어 어항에 부을 것인가.
민물에 사는 동물을 왠지 독하다고 느껴지는 바닷물에 집어넣는 일은 상상도 하지못하면서 짠물에 사는 동물이 '순한' 민물에 있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철저하게 비과학적인 발상에 나는 말문을 잃었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과학상식에 삼투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학창시절에 과학을 싫어했던 이들도 삼투압 정도는 기억하리라 믿는다. 막을 가운데두고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분자가 이동하는 현상말이다.
식물 세포는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질막 바깥을 두툼한 세포벽이 또 한번싸고 있기 때문에 삼투현상에 비교적 잘견디는 편이지만 동물세포는 그렇지 않아 밖으로부터 너무 많은 물이 들어오면 파열되고 만다.
그래서 동물 세포를 실험실에서 보관하려면 반드시 등장액 즉 세포내의 물과 용질의 농도와 같은 농도를 가지고 있는 액체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적혈구를 등장액인1.0% 염 용액에 넣어두면 일정기간 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지만, 만일 저장액즉 세포질 내에있는 물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물을 가지고 있는 용액에 넣으면 삼투현상에 의해 많은 물이 유입되어 결국 터져 버린다.
반대로 고장액에 넣으면 세포질로부터 물이 빠져나가 세포가 쭈그러든다.
이 너무나 단순한 생물물리 현상때문에 짠물에 사는 동물들은 몸에서 너무 많은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또 반대로 민물에 사는 동물들은 세포 안으로 너무 많은 물이 쏟아져들어오지 못하도록 적응되어 살고 있다.
물범들이 조상대대로 어렵게 적응해온 생리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꾸라고 강요할수 있단 말인가.
아프리카 숲 속에서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살던 고릴라가 콘크리트 바닥을 딛고 살아야하는 기구한 운명때문에 손발에 자주 상처가 나며 잘 아물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 어느 동물원에 있는 몸값 10억원의 고릴라는 이미 엄지와 검지 발가락을 잃었다.탈장이 된 상태로 남은 여생을 살아야하는 침팬지를 비롯하여 너무나 많은 동물들이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죽어가고 있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겪고있는 고통은 신체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정신적인 면이 더 심각할지 모른다. 동물보호를 위해 전세계를 순방하던 중 드디어 몇 년전 우리 나라에 들렀던 세계적인 침팬지학자 제인 구돌박사는 우리 나라 어느 동물원에서 만난 침팬지를 잊지 못하신다.
아무리 말을 걸어보려 해도 흰 벽만 바라보고 있던 그 침팬지의 초점 잃은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단다.
나와 만난 자리에서 그 침팬지를 구해달라는 말씀을 몇 번이고 되뇌셨다.
얼마전 그 분의 역저 '인간의 그늘에서'의 번역을 마쳐 곧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제 번역 약속은 지켜드렸지만 아직도 나는 그 침팬지를 구해주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부끄럽고 안타깝다. 부디 이 겨울을 잘 버텨다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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