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조직위원회 문서의 위원장 사인난 위에는 보이지 않는 ‘최종결재란’이 하나 더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국제축구연맹(FIFA)의 승인이 바로 그것이다.월드컵조직위는 ‘대회협약’에 따라 FIFA의 행사인 월드컵대회의 준비와 실무를위임받은 기구에 불과하다. 특히 FIFA의 엠블럼 등 상표권 보호 노력은 집요하기까지 해 조직위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
술집, 운동화 브랜드등으로 사용되는 ‘월드컵’이라는 용어까지 단속하도록 요구할 정도이다. 컨페더레이션스컵때는 공식파트너의 상업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최도시의 홍보 영상물에서 비후원사의 상표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까지 잡아내기도 했다.
이같은 태생적인 한계때문에 올림픽 때와 달리 월드컵조직위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돼있다. 그렇지만 한국조직위가 지나치게 FIFA의 ‘공손한 포로’ 역할에 안주하는 것아니냐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지난 12일 서태지, 리키 마틴 등 세계적인 가수들이 출연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다가 무산된 D_200일 콘서트가한 예이다. FIFA의 상업성에 무지했던 국내 기획사 모닝힐의 아마추어리즘도 지적사항이지만 조직위의 중간역할이 더 큰 문제였다.
조직위는 행사추진단계에서 콘서트를 제안했던 모닝힐에 협찬사 주선 등을 약속하며 직접 행사 주최자로 뛰어드는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FIFA가 엠블럼 사용 등에협조를 하지 않자 모닝힐과의 최종계약을 차일피일 미뤘고 결국 행사는 개최 3일을 앞두고 홍보부족 등으로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FIFA가 공식음반사인 소니뮤직의 이익과 충돌할 소지가 있어 콘서트 음반제작을허락하지 않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직위가 좀 더 적극성을 발휘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월드컵 붐조성을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FIFA를 적극 설득했다면 공연이 깨지는 일까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치밀한 전략과 준비가 부족했다는점은 조직위 관계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조직위의 ‘필터 기능’에대해 개최도시 관계자들도 불만이 많다. 경기장 건설에 대한 기본 협약을 체결한 이후 조직위가 FIFA의 기술부록(TechnicalAnnex)을 추가로 준수하도록 강제해 개최도시는 부랴부랴 경기장 설계를 변경해야 했다.
한 경기장 건설 담당자는 “조직위가‘FIFA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게 돼있다’는 논리에 사로잡혀FIFA의 의무, 권장사항을 혼동하는 일도 있어 혼란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컨페더레이션스컵 때는 개최도시의 문화행사 시간을 FIFA보다 오히려 조직위가 앞장서 막으려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조직위는 본선 조추첨 때 행사장인부산전시컨벤션센터 내 식당가의 영업을 막으라는 FIFA의 요구에도 사실상 굴복, 행사 참가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기로 했다. 국내 영업행위까지 막아달라는FIFA의 ‘월권’에 대한 대응치고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조직위는 시민 캠페인 등을 추진하는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가 FIFA의 반대로정작 월드컵 휘장 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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