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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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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입력
2001.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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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등학교 진학한다고 고향을 떠난 후 가족들마저 서울로 이사하게 되어 모교는 고사하고 고향 자체와도 까마득히 멀어진 듯 살아왔는데 전혀 알 수 없는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니 약간 당황되기도 하였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전북의 전주초등학교로 공립학교라서 지금 교장선생님은 내가 다닐 당시에는 전혀 가르치거나 만난 인연도 없는 분이시다.

그 교장선생님은 정년퇴직이 머지 않으셨다며 그 전에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모아 학생들에게 읽힐 문집을 만들고 싶으니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신다.

전화를 받고 나니 무척 흥분이 되었다.

내 아이들보다도 훨씬 어린 후배들이 우리의 그 시절 이야기를 읽게 된다니!

그 많은 졸업생들 중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은 굉장히 영광스럽기도 했다.

요즈음이 어떤 세상인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세상이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되면 그 문제를 비판하느라 그로 인해 생겨날 파장 따위는 전혀 생각지 않는 사회가 아닌가 말이다.

그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는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10년 전쯤 공무원들에 대한 사정바람이 한참 몰아칠 때, 택시운전사로부터 그 동안은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하였는데 이제는 누가 공무원이 될지 걱정이 된다는 푸념을 들은 일이 있다.

어느 집단에나 비난받을 사람은 있겠지만 집단 전체가 매도되도록 하면 사회가 흔들린다는 걱정의 말이었다.

그 택시운전사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일부 검찰이 조직폭력배와 연관을 가졌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되자 주위의 존경을 받는 중견 법조인은 "자녀들과 함께 텔레비전 보기가 겁나고, 주민들이 직업을 알까 봐 걱정이 된다"는 말도 했다.

이제는 청소년들의 희망인 직업군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예전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장군, 과학자이던 우리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대부분 연예인, 운동선수로 변했다.

의과대학생들이 전에는 산부인과나 외과를 선망하였지만 이제는 성형외과를 선호한다.

이런 직업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미래상을 그리는 것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힘들고 어려운 길보다는 편하고 화려한 길만을 좇게 만든다면, 그리고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고 가르쳐야 할 직업에 대해 그렇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까.

미국에서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세계무역센터의 참극이 빚어진 후 청소년들에 대한 악영향을 고려하여 언론에서 충돌장면의 방영을 자체적으로 중단하였다고 한다.

교육은 반드시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과연 청소년들이 무엇을 보고 자랄까, 무엇을 하며 살고 싶어할까, 미래를 위하여 청소년들에게 어떤 성취동기를 갖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사람만이 자원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튼튼하게 자라주면 좋지만, 자신보다는 나라와 이웃을 위해 바람직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주면 더 고맙겠다'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던 중에 얼굴도 모르는 졸업생으로부터 수 십년전 학교생활에 대한 추억의 글을 받아 '자랑스런 학교역사를 되살리고, 더 나아가 우리 어린이들에게 미래의 꿈을 길러주기 위해' 일일이 전화를 걸어 원고를 부탁하시는 교장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난 사람보다는 든 사람이, 든 사람보다는 된 사람'이 되라시던 스승님들의 말씀을 오랜만에 되새겨졌다.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잊어 버리고 서로를 헐뜯는데 열중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한 이 때에 이런 교장선생님이 어딘가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정말 행복하다.

황덕남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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