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홍윤오기자 한국기자론 첫 아프간 진입1신한국일보 홍윤오기자는 15일 오후 7시(현지시간) 하지 압둘 쿤디르가 지휘하는 반 탈레반군과 함께 동부 전략도시 잘랄라바드시에 도착, 한국기자로는 처음으로 탈레반이 지배했던 아프가니스탄 요충지를 현장 취재했다. 다음은 홍기자가 보낸 제1신
16일 아프가니스탄의 아침은 고요했다. 전날까지 탈레반의 동부 거점이자 오사마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군사도시 잘랄라바드.
칠흙 같은 어둠이 걷히자 불안한 모습의 시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시작했다.
이른 아침인지 중심가에 있는 ‘낭가하르주’ 지사저택에 수명의 무장병들이 서성일 뿐 군인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철시한 시장에선 아직 수염을 기른 노점상들만이 과일과 일용잡화를 담은 바구니를 나르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리키샤’라고 불리는 3륜차 택시가 오가고 있었고, 자전거를 탄 채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시장 거리 앞에는 대형 버스 2대가멈춰 있었지만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이날부로 이 도시는 파슈툰족 군벌 하지 압둘 쿤디르가 장악했다. 그는 아프간에 침투해 파슈툰족의 반 탈레반 봉기를 일으키려다 붙잡혀 처형당한 압둘 하크 장군의 친형이다.
쿤디르가 이끄는 게릴라 병력 600여명은 전날 저녁7시께 세계 각지의 기자단을 대동하고 파키스탄을 출발, 간선도로인 카이버 패스(Khyber Pass)를 거쳐 잘라라바드에 도착했다.
이집트인 사령관아부 카심이 지휘하던 탈레반 군, 그리고 이곳에 진지를 갖고 있던 알 카에다 요원들은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 하루 전 탱크 등을 버려둔 채 러시아제 군용헬기를 타고 산악지대로 떠났다.
탈레반의 지하드(성전)에 참전하기 위해 파키스탄에서 들어왔던 파슈툰족 민병대 수백 명도 잘라라바드를 떠나 우리일행이 들어왔던 카이버 패스를 반대방향으로 달려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한국일보 기자를 비롯, 영국 더 타임스와 데일리 텔레그라프,BBC,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 등 기자단도 쿤디르 군의 안내를 받아 잘랄라바드 시내 스핑가르 호텔에 마치 여행객들 처럼 투숙할 수 있었다.
기자단을 안내한 무자헤딘들은 기자에게 “너무 조용해 기분이 이상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이들 가운데 수명은 최근에 탈레반이 강요했던 수염을 깎은 듯, 턱주변이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호텔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우리는 평화를 가져다줄 사람을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수일간 교섭한 끝에 기자단이 쿤디르의 호화저택에서 출발하는 차량에 동승한 것은15일 오후 3시께였다.
낡아빠진 픽업트럭, 밴 차량 등 무려 150여대의 차량행렬이 파키스탄 페샤와르를 출발, 국경 검문소인 토르크햄으로 향했다.
각지에 숨어 있던 하지 딘 모하메드, 카지 모하메드 아민 와카드 등 10여명의 군벌들이 미국과 파키스탄의 자금을 받아 구입한 무기를 든 무자헤딘들을 인솔해 쿤디르의 깃발아래 모여들었다.
좁고 울퉁불퉁한 카이버 패스는 차량과 사람의 행렬로 시종 붐볐다. 길가에서는 폭격으로 파괴된 탱크와 장갑차 등 차량을 50여대 목격할 수 있었다.
트럭에 함께 탄 파슈툰인 안내원은 “어제까지만해도 길에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첫 마을을 지나자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우리를 처다보았다.
일부는 낡은 무기를 든 채 버려진 탱크위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런 몸짓도 하지 않았다. 35세의 파슈툰 모흐만드라는 전사는 “탈레반에는모두 진저리가 났을 것”이라면서 “우리의 관심사는 정부와 직업이 없다는 것, 타지크인과 우즈벡인들의 파슈툰족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졌다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오후 6시께 트럭이 토르크햄을 통과하자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해는 험준한 회색빛 산맥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미군의 공습이 시작된 뒤 잘랄라바드는 날이 지면 빛이 사라지는 암흑의 도시로 변했다.
홍윤오기자
yo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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