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언제 바깥에 나가서 주차단속을 합니까”서울시 K소방서에 근무하는 한 소방관은 주차단속여부를 묻는 질문에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시가 불법 주ㆍ정차를 뿌리뽑는 다며 지난 10월부터 산하 소방대원을 비롯, 공무원들에게 주차단속권한을 주었지만 정작 대상자들은 심드렁하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가 불법주ㆍ정차 단속확대제도를 본격 시행한 것은 10월초부터.
시의 특별전담반과 함께 소방대원 청소ㆍ가로정비반, 동사무소 직원 등 단속인원을 1만7,000여명으로 늘리고 해당 요원들을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교육했다.
그리고 공무원들을 현장에 투입한지 한달이 지났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당 구청이나 소방서 등에선 인원부족과 민원 증가를 이유로 적극적인 단속을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구청에서는 특히 내년 구청장 선거 등을 의식, 솜방망이 단속에 그치고 있다.
16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25개 자치구중 14개구의 불법주차 단속은 100건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랑ㆍ은평ㆍ구로구 등에선 아예 한건도 없다.
8,308건으로 타 구청에 비해 단속실적이 월등히 높은 강남구도 작년 10월 열린 제3차 아셈(ASEM)정상회의때 각 동사무소에 배치된 교통단속 전담 요원 덕택이라고 한다.
동사무소를 제외하면 다른 부서의 실적은 전무하다. 또 중부ㆍ성북ㆍ성동소방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방서도 적발건수가 미미해 불법주ㆍ정차 단속권을 방치하는 듯한 인상이다.
게다가 구청간에 단속 의지와 실적이 제 각각이어서 지역별로 형평성 시비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선 동사무소의 반응도 차갑다. S구의 한 동사무소측은 “동사무소 기능전환으로 인력이 줄어 주차단속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동사무소에선 불법주차 신고가 들어와도 마지못해 구청의 교통단속반에 도움을 청하거나 인력부족을 이유로 애써 민원을 피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주차단속은 내 일이 아니라는 해당공무원들의 시각. 괜히 단속에 나서 주민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게 대상자들의 귀띔이다.
또 단속결과를 일일이 교통지도과에 보고해야 하는 것도 번거롭다고 한다. K구청 관계자도 “기존의 업무 외에 거주자 우선주차제 문제까지 겹쳐 다른 부서나 동사무소 등에 단속을 독려할 엄두를 못낸다”고 실토했다.
소방차나 청소차 진입 등을 방해하는 불법주ㆍ정차 차량의 직접 단속을 통해 주ㆍ정차질서를 확보하려던 새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주ㆍ정차단속권의 공무원 확대시행은 한달만에 이미 겉돌고 있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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