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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백상출판문화상 / 42년전통 국내유일 책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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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백상출판문화상 / 42년전통 국내유일 책축제

입력
2001.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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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19세기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는 이렇게 책을 예찬했다.또 다른 책 예찬자는 “천국은 아마 도서관의 모습이리라”고도 했다.

이 아름다운 책의 잔치인 제42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이 열린다.

이 상은1960년 남달리 책을 사랑했던 백상(百想) 장기영(張基榮) 한국일보 창간발행인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이후 42년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해 동안 가장 좋은 책을 지은 저자와 책을 낸 출판사(출판인)을 격려한 이 상은 국내 유일, 최고의 전통과 권위라는 말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그대로 한국 현대 출판의 산 역사이다.

■응모 도서ㆍ시상 부문 증가

1회 당시 출품 도서는 20개 출판사가 응모한 121종 402권이었다.

이후 참가 출판사와 도서 종 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1982년 출판사 수는 100개를 넘어 102개 사에서 261종 709권의 도서를 응모했다.

1991년 출품 도서 종 수는 561종(124개 출판사), 1996년에는 1,074종(190개 출판사)으로 1,000종을 돌파했다. 한국 출판의 급성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1960년대까지는 주로 전집ㆍ사전류가 빛을 발했다면, 70년대에는 문학ㆍ인문서, 80년대 이후에는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사회과학 서적이 주류를 이루었다.

수상작의 제목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한국’이다. 이 상의 한국학 분야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보여주는 증거다.

90년대 이후에는 어린이책과 예술, 환경ㆍ생태 분야 책 응모가 두드러졌다.

시상 내용도 점점 엄밀하게 세분화했다.

초기 저작상ㆍ제작상 두 부문이었던 것이 저작상은 인문ㆍ사회, 자연과학, 시사ㆍ교양 부문으로 나눠졌고, 제작상은 출판상이란 명칭으로, e북상까지 추가되는 등 책의 기획에서부터 편집, 디자인까지출판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13개 부문이 시상된다

■저작상 수상자들

역대 저작상 수상작과 수상자들의 면면은 현대 한국 학문ㆍ문화의 발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자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회 ‘고어사전’으로 수상한 남광우 선생부터, 지난 해 수상자인 김우창 진덕규 전호태 교수까지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 수상자들은 한국 학계의 얼굴들이었고 그들의 수상작은 우리 학문이 이룩한 성과를 집약하는 저서들이다.

주요한, 이상백, 강소천 선생의 노작들이 초기 명단에서 눈에 띈다.

김원룡의‘한국 미술사’, 김윤식의 ‘한국근대문예 비평사 연구’, 김철준의 ‘한국 고대사회 연구’, 조동일의 ‘한국 문학통사’ 등 이제는 각 학문분야에서 고전이 된 저작들이 차례로 수상했다.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의 저작상은 이처럼 1960년대 이후 최고의 학술상이기도 했다.

저작상 수상자들에 얽힌 기록도 많다. 최연소 수상자는 1980년 ‘법사와 법사상’으로 수상한 최종고 교수로 당시 34세였다.

이종욱, 김윤식, 이성규 교수 등도 30대 수상자로 김윤식 교수는 요즘도 수상 당시를 회상할 때면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고 나니 갑자기 유명해지더라”고 말한다.

1985년 ‘분단시대의 사회학’으로 저작상을 받은 이효재 교수의 인터뷰 기사는 신문 초판에만 나가고 타의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분단 극복 의지를 민족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가자는 저서의 취지가 당시 군사정권에 거슬렸던 것으로, 책과 시대의 아픈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출판사들

매년 연말인 12월 중순 경에 발표되는 수상자, 신문 전면에 게재되는 출판사별출품 도서의 명단은 그대로 출판사ㆍ출판인의 잔치 자리가 된다.

역대 가장 많은 저작상을 수상한 출판사는 일조각이다.

일조각은 4회 수상작인 송욱의‘시학 평전’부터 31회 유영익의 ‘갑오경장연구’까지 모두 16차례나 저작상 수상작을 냈다.

지식산업사가 김철준의 ‘한국 고대사회 연구’에서 지난 해 진덕규의 ‘한국 현대정치사 서설’까지 7차례, 민음사도 28회 김태준의 ‘홍대용평전’을 시작으로 36회 김두진의 ‘의상_그의 생애와 사상’까지 6차례 수상작을 내 양서의 산실임을 입증했다.탐구당, 한길사, 나남출판, 열화당 등 명문 출판사와 대학 출판부도 수상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신간 발행 종 수는 3만 4,961종, 부수는 1억 1,294만 5,032부에 이른다.

하루에 100종 가까운 책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한국 출판은 양적ㆍ질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 많은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 독자에게 알리고 저자와 출판인을 격려하는 한 판 양서의 축제가 바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이다.

올해도 이 상은 우리 책의 수준이 곧 우리 문화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김윤식 14회 저작상 수상ㆍ문학평론가ㆍ명지대 석좌교수▼

처녀작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처음 낸 책(작품)을 가리킴이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책에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 예술의 저작에 이 말이 어울리는 것을 보면 그 사정을 알 수 있다.

미적 울림이 거기 은밀히 작동하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미적 울림이란 또 무엇이겠는가. 운명스러움의 울림이 아니겠는가.

그와 그의 미래를 거울처럼 비춰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있어 그것은 ‘한국 근대 문예비평사 연구’이다.

글쓰기 공부를 위해 대학 국문과에 들어왔으나 대학은 학문(과학)하는 곳이었다.

이 첫번째 낭패감을 자진 군복무로 가까스로 추스렸다고나 할까. 복학하여 비로소 학문의 길에 나아갈 수 있었다.

학문이란 그 자체의 고유한 방법론이 있다는 것, 또 그것이 인류사의 나아가는 방향에 알게 모르게 관련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되자 비로소 지평선 위로 비전이 떠올랐다.

이른바 '근대'가 그것이다. 도대체 근대란 무엇인가. 이 화두와 씨름하지 않고는 우리 문학의 근대를 논의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곡절을 겪으며 그 때 내가 본 것은 인류사의 진행방향의 한 대목인 근대가 우리의 카프문학(1925~1935)을 축으로 하여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장면이었다.

원고를 작성하였으나 당시로서는 내용이 문제적인지라 어느 출판사도 응해주지 않았다.

원고 보따리는 수 년을 묵을 수밖에 없었는데, 요행히도 인쇄소를 가진 무명의 출판사의 용기에 힘입어 햇빛을 본 것이 바로 ‘한국근대문예 비평사 연구’(한얼문고)였다.

▼홍지웅 40회 출판상 번역 부문 등 수상ㆍ열린책들 대표▼

뭐니뭐니 해도 책은 ‘살아 움직이는’ 미디어이다.

나는 인간이 생각해 낸 고안품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의 고안품이 책이 아닌가 싶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결국은 서책의 형태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많은 미디어들이 서책을 대신할듯 보이지만 책이 품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다른 미디어가 절대로 대신할 수는 없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한 권의 책에는, 이미 글지이의 혼이, 만든이의 정신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닌이의 개인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책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러한 혼들과 정신들이 세포분열하듯이 다른 생각들을 연쇄해내고 다른 사람들을 연좌해내는 ‘살아 움직이는’ 유일한 미디어이다.

그래서 그러한 책을 짓고, 만들고, 지닌 이들을 칭찬하고, 박수를 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우리 사회의 책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전통이 오래되었고 언론계에서 만든 유일무이한 상인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그 제정 취지나 의미가 더욱 돋보인다.

우리 출판사도 여러 번 이 상을 받았지만 재작년엔 ‘뿌쉬낀 전집’으로 옮긴이가 번역상을 받은 적이 있다.

전집 기획 당시 나는 역자에게 “이 책을 번역하게 되면 500권도 팔리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반드시 받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었다.

옮긴 이는 예상대로 번역상은 물론 러시아 정부의 뿌쉬낀 메달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나는 우리 사회에 보다 많은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이 생겨서, 보다 많은 글지이와 만든이들이 격려받고 고무되어 출판문화 수준이 한 단계씩 고양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일본처럼 국경일 단상에 책 만든이를 3부요인과 나란히 초대하는 사회가, 독일처럼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책을 만드는 사회가, 영국에서처럼 글지이가 사회적인 영예와 특권을 누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한기호 41회 출판상 기획 부문 수상ㆍ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오늘날 정보의 양은 해마다 두 배나 증가될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책 또한 마찬가지다. 대형서점에는 하루에도 신간 서적 100여 종, 새 잡지 100여 종이 새롭게 도착한다.

출판물의 수명이 매우 짧아지고 있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자전거 페달을 돌리듯이 신간을 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독자는 어떤가?

‘소비자는 왕’이라지만 대형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길을 잃고 만다. 그래서 이제 정말로 좋은 책을 골라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러나 매주 소개되는 신문의 출판면은 신간 위주로 소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늘어난 지면으로 인해 출판 전체의 흐름을 알기도 어렵거니와 진정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올해 42회를 맞이하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해마다 정보의 홍수, 책의 홍수 속에서 길 잃은 독자에게 눈밝은 이정표가 돼 주었다.

한 해에 간행된 책 중에서 최고의 책만을 골라 엄선해 주는 역할을 최장기로 해주다보니 출판 관계자들과 독자들에게는 이미 국내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책 축제가 됐다.

또 이 상은 한 해의 양서만을 골라주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성의 권위 이상으로 신진 저자와 편집·기획자들의 실험정신 또한 매우 높이 사주었다.

그래서이 상은 모든 출판인들에게는 꿈의 터전이 될 뿐만 아니라 한 해 출판의 새로운 흐름을 집약해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이제 이 상을 한 번 수상하기만 하면 바로 ‘명망성’의 확보로 이어지곤 한다.

우리가 42회 수상작들을 마음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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