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분당 백궁ㆍ정자지구 용도변경특혜의혹 사건 보도를 접하는 느낌은 남달랐다.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서(水西)사건' 취재 당시가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1991년 1월 21일 서울시는 강남수서택지개발지구 토지 3만5,000여 평을 주택조합에 '특별' 공급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땅은 서울시가 아파트를 지어 무주택 서민들에게 분양해야 할 땅이었다.
특별공급은 불법이고 특혜였다. 며칠 뒤 정치권에서 수서 특혜ㆍ로비 의혹을 제기하면서 수서는 대서특필됐고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나는 당시 시청에서 막내 기자로 뛰고 있었다. 부시장의 발표를 듣는 순간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이제 이 사건은 내 손을 떠났다. 앞으로 검찰 기자들이 날밤을 새겠구나" 라는생각이 스쳐갔다. '내 손을 떠났다'는 표현은 '기자로서 할 만큼은 했다'는, 어쩌면 자부심 같은 것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자괴감이 든다.
나는 수서가 '사건'이 되기 훨씬전부터 이 문제를 꾸준히 추적했다.
"왜 같은 얘기를 또 쓰느냐"는 데스크의 지적에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될 테니 지금 '못'을 박아 놓아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 건의는 받아들여졌고 기사는 살아 남았다.
문제는 아쉽게도 기사들이 눈에 띄는 1면, 사회면이 아닌 수도권면에 파묻혔다는 점이었다.
한보그룹의 로비설을 실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종 운운하기도 쑥스러웠다.
그나마 다른 신문이 안 쓰는, 또는 못 쓰는 것을 그래도 우리 신문은 , 나는 썼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이 한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검찰 내사에서 드러나 시청 기자 상당수가 교체되는 것을 지켜보게 된 것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수서사건이 끝난 뒤에도 한국일보 사회부서랍 속에는 몇 년간 수첩 하나가 남아 있었다.
수사가 한창일 무렵, 후배 경찰기자가 '입수'한 한보건설 사장의 개인수첩이었다. 시간과 장소,만난 사람의 성과 모호하게 표현된 직급, 암호 같은 메모 등을 악필로 적은 것이었다.
암호해독의 과제가 내게 떨어졌다. 2시간여 만에 재구성한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청와대 비서관의 수서 사건 개입이 좀 더 '윗 선'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추론을 충분히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확인해줄 '입'(deep throat)은 아무 데도 없었다.
결국 '한보의 수서 시나리오'라는 가제의 기사는 원고지로만 남고 말았다. 그 수첩을 버리지 않은 것은 다시 쓸 수 있는 날이오지 않을까 하는 미련 때문이었다.
백궁ㆍ정자지구 건도 여러 번 기사화됐지만 대부분 수도권면에 파묻혔다가 의원들의 의혹 제기를 계기로 대서특필된 사안이다.
수서의 재판이 될 지는 검찰 수사를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관련 수첩하나만 입수한다면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고 싶다. 활자화하지 않은 기사는 변명에 불과하니까.
이광일 문화과학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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