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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평화공존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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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평화공존도 어렵다"

입력
2001.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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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부터 14일까지 열렸던 제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은 매우 상징적이었다.정전이되어 촛불을 켜고 회담을 진행했던 금강산 여관의 열악함,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남한의 테러경계 조치를 문제 삼아 '쌀'이 걸린 회담을 결렬 시킨 북한의 생트집은 새삼 그들의 모순을 부각시켰다.

일정을 연장하며 금강산에 일주일을 머문 남측대표단의 인내심도 인상적이었다. 그 인내는 기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노력으로 비쳤다.

남측 대표단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작년의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열렸던 장관급회담이 공동보도문을 내지 못하고 결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견이 좁혀지는 듯 하던 이산가족 상봉도 수포로 돌아갔다.

고령의 이산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이번에 남측대표단이 회담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결렬'을 수용한 것은 잘 한 일이다.

햇볕정책의 성과에 조급증을 보이던 정부가 회담 결렬을 수용할 만큼 냉정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부는 냉정해져야 한다. 냉정해야 사태를 바로 보고 전략도 세울 수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외골수로 햇볕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밖에 다른 전략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 결과 많은 국민으로부터 북한에 끌려만 다닌다는 비난을 받게 되고, 상당부분 북한을 오도해 왔다.

남한의 정성이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은 이제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공영을 논의하는 사이가 됐다.

6.15선언 이후 쏟아져 나왔던 경의선 복원, 개성공단 조성, 직항로 개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등 무지갯빛 계획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들이 폐기처분 된 것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는 큰 획을 그었고,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물론 달라지지 않은 것도 많다. 북한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다.

합의를 멋대로 뒤집고, 생떼를 부리고, 무례하게 굴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을 무시하고, 남한의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도 아직 부족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남한정부의 노력을 향해 번번이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2000년 6월15일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던 순간의 감격은 소중하게 역사속에 간직하고, 이제는 지난 17개월의 경험을 토대로 현실적인 대책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 북한의 상황에서 엄격하게 상호주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우리나름의 어떤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햇볕정책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북한을 진정한 대화상대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북한은 쌀을 받기 위해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동의하고 적당한 선에서 생트집을 거둬들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회담은 결렬됐다.

북한이 쌀을 원하는 것 못지않게 남한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원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남측이 더 다급할 것이라는 북한의 오해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모든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장소로 금강산을 고집하는 것은 금강산 왕래를 활성화함으로서 밀린 관광대금을 받아내고, 남한 정부로 하여금 현대 대신 돈을 내게 하겠다는 계산일 수도 있다.

북한이 그런 오산을 했다면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 앞으로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빈손으로 돌아온 홍순영 통일부 장관은 "평화공존이란 대결의 시대만큼이나 관리하기 힘들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말이다. 오늘 햇볕정책이 국민과 북한으로부터 동시에 도전 받게 된 것은 '평화의 관리'를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잘못이 크다.

홍 장관은 이번에 두 번째로 남북회담에 참가했는데, 햇볕정책의 맹목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햇볕정책을 보다 성숙하게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평화공존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으며, 평화공존이란 대결 못지않게 관리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정부와 국민이 공유하는 것이다.

김정일이 언제 오느냐, 남북관계가 언제 풀리느냐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태를 햇볕정책이 보다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는다면 결렬을 섭섭해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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