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김은성(金銀星) 국정원 제2차장을 경질한것은 의혹의 실체와는 별개로 김 차장이 국가정보기관의 핵심 간부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김 차장이 폭행 및 금품수수 의혹을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대형 금융사건인 각종 게이트에 연루설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질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비리나 잘못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설(說)만으로는 고위 공직자를 교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김 차장의 경우는 다르다. 국정원의 2인자인 김 차장이 각종 게이트를 사전에 봉쇄하지는 못하고 거꾸로 이리저리 얽혀 있다는 점은 개인적 처신의 문제를 넘어 국가정보기관의 위상과 안위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라고 본 것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정원 핵심 간부의 비리 연루 의혹은 정보기관의 동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적성 집단 등에 의해 악용될 위험성마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 2차장이라면 어느 정도 베일에 싸여있을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 “김차장이 금감원 검찰 등에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의견을 자주 전했다는 점은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었다”고 말했다.
김 차장 경질 방침이 신속하게 결정된 데는 김 대통령이 총재직 사퇴 후 취하고 있는 '국정 전념’의자세와도 연관이 있다.
총재직까지 버리고 새롭게 국정에 임하는 마당에 각종 게이트에 이름이 거론되는 김 차장을 안고가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옷 로비 사건에서 처리를 늦추는 바람에 대통령 자신이 엄청난 부담을 안아야 했던 경험도 조기 경질의 준거가 됐다고 봐야한다.
김 차장도 경질 하루 전인 14일 신 건(辛建) 국정원장에게 게이트 연루 의혹을 부인하면서도“국정원에 부담을 끼쳐서는 안되며 야인으로서조사를 받겠다”고 사의를 표명했다.
국정원 일부 직원들이 ‘비리는결단코 없다’는 김 차장의 말에 비중을 두고 15일 오전 “사의표명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한때 혼선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신 원장이 청와대에 김 차장의 사의를 전하고 경질 방침이 확정되면서 혼선은 정리됐다.
문제는 경질 이후다. 각종 의혹이 김 차장의 사퇴만으로 묻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 차장이 진승현게이트와 관련, 검찰 고위간부에 구명로비를 했다’는보도까지 나온 상황이어서 검찰의 재수사가 불가피하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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