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명교류사 연구의 권위자 정수일(67ㆍ일명 무하마드 깐수)씨가 최근 중세이슬람 지성의 세계 편력 기록인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처음으로 완역ㆍ출간한 데 이어 역저 ‘고대문명교류사’(사계절출판사 발행)와 ‘씰크로드학’(창작과비평사 발행)을 동시에 펴냈다.고대ㆍ중세ㆍ근현세로 나뉘어지는 3부작 중 첫 편인 ‘고대문명교류사’는 인류 5,000년 역사를 여러 문명간 교류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국내 최초의 시도이자 세계에서도 드문 것이다.
“교류를 떠난 문명사 연구는 편파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보편사를 향한 첫 디딤돌을 놓으면서, 그는 서양중심이 아닌 독자적 시각을 유지한다.
‘씰크로드학’은 그동안 교통사또는 지역학에 치우쳤던 씰크로드 연구를 하나의 포괄적이고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하려는 개설서다.
씰크로드학의 개념과 범주, 방법론을 제시해 학문적 주춧돌을 놓고 있다.
또한 씰크로드를 13세기까지 중국과 로마를 잇는 길로 파악하는 통설과 달리 한반도까지 연장하고 그 개념을 15세기 이래 구대륙과 신대륙 간에 전개된 환지구적 교류 통로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각각 700쪽에 이르는 이 두 권의 방대한 저술은 남북 분단의 시대적 고난 속에 힘겹게 피어난 꽃이기도 하다.
중국 옌볜 출신으로 남북한 양쪽에서 대학교수를 지낸 그는 북한 공작원으로 밝혀져 5년간 옥고를 치르고 지난 해 광복절특사로 풀려났다.
‘고대문명교류사’는 구속되기 전 써둔 것의 보완이며, ‘씰크로드학’은 감옥에서 한여름 찜통 더위와 손이 곱는 한겨울 추위와 싸우며 연구하고 메모했다.
자신의 뼈를 깎아 학계의 재보를 내놓은 셈이다.
출옥 후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고사하고 있는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씰크로드학’ ‘고대문명교류사’의구상ㆍ집필 과정과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문명교류사를 학문적으로 정립해 보자는 취지에서 이 두 책을 쓰게 됐습니다. 집필과정이래야 별 것 없습니다. 어려움이야 남들도 다 겪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료는 집사람이 하나하나 들여보내서 얻은 것입니다.”
-18세기 이후 세계가 급변했기 때문에‘고대문명교류사’ 의 후속작업 중 근현세편은 이전 시기인 고대ㆍ중세편과 크게 다를 것으로 짐작됩니다.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요.
“근현세편은 틀만 잡아놓고 아직 구체적 구상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물론 전대의 계승이겠지만 문명 발달과정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난 시대이니 그 점을 반영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씰크로드학’의 방법론 중 하나로 현장조사(Fieldwork)에 의한 실증적 연구를 강조했는데, 영어의 몸으로서 이 점이 많이 안타까웠을 것 같습니다. 연구 보완을 위한 현장조사 계획은.
“현장답사를 통해 길도 재확인하고 유물사진도 직접 찍고 하여 말 그대로 ‘제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또 응당 그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집필을 포기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냥 미룰 수는 없어서 무리를 무릅쓰고 써냈습니다. 현장조사는 당장이라도 해야 하고 하고픈 마음도 굴뚝 같지만 지금의 처지로는 불가능하니 계획 같은 것은 마련할 수 없습니다. 기회가 오기를 고대합니다.” (그는 현재형 집행정지 상태다.)
-‘실크로드학’에서 실크로드 개념을 한반도까지 연장하고 환지구적 통로로 확장한 것은 새로운 학설로 보이는데.
“새로운 학설이란 거창한 표현은 좀 적절치 않고, 그저 몇 가지 나름대로의 학문적견해를 제시한 것 뿐입니다. 무릇 학설이란 학자들의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학계의 논의와 검토를 위한 장을 제공했을 따름입니다.”
-이번 두 책의 가치와 의의, 한계와 보완점은.
“학문적 가치나 의의는 학계의 평가에 맡깁니다. 퍽 모자라는 물건이라서 보완점은 한 둘이 아닙니다. 학문으로서 체계를 제대로 세워야 하고, 사료도 보다 전면적ㆍ포괄적으로 개발해야 하며 기존 사료도 재검토해야 합니다.”
-출감 후 어떻게 지내는지요.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피하는 것은 몸은 풀려났으되 마음은 아직 갇혀있음을 가리키는가요.
“여러분의 배려 속에 별고 없이 지냅니다. 언론 접촉을 고사하는 것은 그 동안 책 만드느라 시간 여유가 없던 데다가 지금의 처지에서는 삼가는 것이 좋을 성 싶어서입니다, 그렇다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일은 없습니다.”
-줄곧 문명교류사 연구에 매달려 온 까닭과 거기서 얻은 소득은.
“문명교류만이 인류의 공생공영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연구에 뜻을 둔 것입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해서 소득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부족뿐인 것 같습니다. 문명교류사는 포괄적 학문이기 때문에 자신의 학문 영역을 부단히 넓혀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학제간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분단 비극의 희생자로서 고난을 겪으면서 무엇으로 자신을 추스리고 일으켰는가요.
“우리 세대는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세대입니다. 모든 것을 시대적 소명으로 여기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중국, 북한, 레바논, 필리핀 네번의 국적 변동을 거쳐 대한민국 국적을 신청한 것으로 압니다. 코스모폴리탄으로서 대한민국 국적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요.
“한 자연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학인으로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한 나라 한 겨레입니다. 영원히 이 땅에서 살다가 이 땅에 뼈를 묻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짜놓은 것이 없습니다. 종심(從心)에 가까운 인생이 무슨 큰계획 같은 것을 세울 수 있으련만, 공부하는 사람이니 어떻게 하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만 뇌리에서 맴돕니다. 계획했던 대로 ‘고대문명교류사’의 속편으로 ‘중세문명교류사’와 ‘근현세문명교류사’를 쓰고, 지금 작업중인 ‘문명교류사 사전’도 얼마쯤 있다가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또 동학이나 후학들과 함께 ‘신라ㆍ서역 교류사’에 이어 ‘고려ㆍ서역 교류사’와‘근현대 한국 대외교류사’를 펴내고 싶습니다. 학문이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연구소 같은 것을 하나 꾸려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교류사 연구 수준을 선진 내지는 선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당면하여 어려운점은 신분증이 없다 보니 도서관에 드나들 수 없는 일입니다.”
/오미환기자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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