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대학만 붙으면'을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취직만 되면'을 이야기한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고시에 패스하기만 하면, 원하던 대학원에 진학하기만 하면 인생이 훨씬 행복해질 것 같다고들 말한다. (중략) 물론 그 단계를 우리보다 일찍 거쳐간 사람들은 '또다른 시작'일 뿐이라 말하며 그 시작은 기대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마치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 같다는 고3에게 우리가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이 글은 학생기자가 대학신문에 쓴 칼럼의 일부분이다.
이글을 쓴 기자는 이미 알고 있다. 정작 대학에 들어가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더불어 정작 취직이 되어도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 통과의례가 "유난히 힘들고 불안하기에" 비현실적 꿈을 키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학생기자의 어른스런 해석이다.
바야흐로 입시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 앞에서 지금으로부터 1년 후를 상상해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소 귀에 경(經)읽기 식' 조언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대학에 일단 붙고 보자'가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필히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임이 확실하다.
정작 중요한 스토리는 대학 입학 이후부터 시작되기에 하는 말이다.
작년이 맘 때의 입시전쟁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대학교 신입생이 된 학생들로부터 종종 듣게되는 이야기가 있다.
"실은 고 3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땐 그나마 대학합격이라는 목표가 있었잖아요. 지금은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요."
이런 유형의 방황을 하는 학생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이 학생들은 "부모(대개는 엄마)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대학은 그냥 점수대가 맞아서 지원했고 전공도 부모의 뜻에 따라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것도 재미없고, 친구 사귀는데도 성의가 없으며, 남들은 대학시절이 인생의 황금기라는데 정작 본인은 별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한데 이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소중한 꿈을 키워 가는 학생들이 있다. 이 학생들에게도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고민이에요.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철학 공부가 하고 싶어지고. 영화공부도 재미있고 동아리 활동도 흥미진진하고... 하루 24시간이 짧기만 합니다.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난 것도 행운이라 생각해요.”
그렇다고 이 친구들이 눈앞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 성격의 소유자들은 결코 아니다.
소외된 이웃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고, 사회 정의감도 투철하며, 학문적 호기심도 왕성하다.
1년전 이 학생들의 수능 점수 차이란 오십보 백보였을 것이다. 굳이 차이가 있었다면 부모가 자녀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자녀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앞으로 3-4년 후 이들이 사회를 향해 첫 발을 내디딜 때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큰 차이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올해는 바로 우리가 낳은 딸·아들들이 수험생이 되었기에 입시전쟁을 바라보는 나의 감회가 예사롭지만은 않다.
'대학만 붙으면'의 절박한 심정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에 붙고 나서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 그런 만큼 정작 대학을 다녀야 할 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과 더불어서 말이다. 인생성적표가 수능 성적표와 일치하지 않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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