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도하에서 열린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출범은 ‘자유무역 확대를 통한 세계경제의 공동번영’ 이라는 발족당시의 테제측면에서 볼 때 회원국 모두의 승리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는 명분일 뿐, 국가별로는 희비가 엇갈렸다. 이번협상에 따른 한국의 손익계산과 관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뉴라운드 출범으로 연간 국내총생산(GDP)에서 약 2~3% 플러스 효과가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은 이같은 산술적 계산을 떠나 농업ㆍ수산업 분야에서 고질적인 협상력ㆍ정보력 부재의 문제점을 노출했다. 특히 선진국에밀리고 개도국의 수적 공세에 치이는 ‘넛 크래커(Nut-Cracker)’ 위기감과 함께 국제 협상무대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재확인했다.■개도국 ‘승리, EU ‘패배e’
우선 WTO의 대주주미국은 투자ㆍ경쟁과 수산보조금, 지적재산권 등에서 실리를 챙겼지만, 반덤핑 분야에서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어 명암이 엇갈렸다. 일본 역시 제네바실무회의 과정에서 대체로 만족스런 성적표를 받았지만 농업과 수산보조금 분야에서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각료회의 기간 내내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고,궁지에 몰렸던 유럽연합(EU) 역시 막판에 농업분야에서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환경분야에서도 부분적인 협상개시 ‘성과’를 얻어내 체면을 살렸다.
이번 협상의 ‘승자’를 꼽는다면 절대 다수의 개발도상국. 막판에 선진국들의 공세에 밀려 환경 투자 등 일부 부문에서 밀렸지만 지적재산권 및 공중보건에서미국 스위스 등 선진국 그룹의 결정적인 양보를 얻어냈고, 반덤핑협정 개정의 성과도 얻었다.
또 4차 각료회의가 출범시킨 6개 협상의제별 분과위원회외에 개도국 현안만을 따로 묶어 집중 논의하는 ‘제7 분과위’를 얻어내는 보너스도 챙겼다.
■ 한국 농업 참패ㆍ반덤핑 빛바랜 성과
우리나라의 전리품은‘반덤핑협정 개정 협상’ 개시. 미국은 우리나라등의 반덤핑완화 요구와 관련, 자국의 주권 침해라며 의제 채택조차 거부했다. 하지만 개도국은 물론EU와 일본까지 우리측 입장에 가세해 미국을 압박함으로써 반덤핑협정 개정 협상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미국은 2차초안에서 반독점 조치의‘기본적인 의미는 유지한다(preserving the basic concepts)’는 문구를 삽입해 개정의 한계를 명확히 했고, 최종 각료선언문에서는‘적법한 무역구제의 수단과 효용성은 지킨다’는 문구를 또 다시 추가, 우리측 성과가 빛을 바래게 했다.
최대 손실이라면 우리 대표단의 대세에 대한정보력 부재를 극명하게 드러낸 농업분야. 우군(友軍)으로 믿고 있던 일본으로부터 발등을 찍혀 고립을 자초했고, 미국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일본은농가소득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미만으로 우리(65%)와 사정이 다른 데다, 정부의 농가 허용보조금(소득보전 직접보조)이 소득의9.4%(우리나라 2.6%)에 달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의 공조파기는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각료회의 막바지에 ‘협상결과를예단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역시 EU의 협상력이 얻어 낸 결과일 뿐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실질적인(substantial)시장개방 이행계획서(양허안) 제출 등 농산물 시장개방 일정마저 앞당겨져 2004년 시작되는 쌀 개방협상과 함께 후속협상에서 불리한 형국을 맞게됐다.
수산보조금 분야 역시 유일한 우군이었던 일본이 대세를 읽고 전격 수용의사를 천명하며 한껏 ‘생색’을 내는 동안 우리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잃는 망신을 감수해야 했다.
■ 다자 무대의 ‘넛 크래커(Nut-Cracker)’우려
도하 각료회의의 의장인카타르의 카마르 통상장관이 13일 배포한 ‘수정초안’ 농업의제에서 우리 정부가 끝까지 고수하겠다던‘점진적인(progressive) 개방’이라는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정초안은 회원국간 합의가 덜된 쟁점사항에 대해서는 브래킷([])으로 묶어 작성됐던 점에 비춰, 이미 한국의 주장은 쟁점조차안됐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EU가 주장했던 농업 수출보조금의 ‘점진적 철폐(phasing out)’는 버젓이 브래킷에 담겨 배포됐다.
미국 일본캐나다와 함께 다자라운드의 ‘쿼드국((Quadㆍ빅4)’으로 통하는 EU의 무게를 실감케하는 대목이다. 반면에 수적 우세를 앞세운 개도국의 단합된힘은 시애틀 각료회의에서 맹위를 떨치던 주도국가들의 ‘그린룸 회의’를 무력화시키는 위력을 과시했고 뉴라운드 좌초의 배수진을 친 강한 입김은 실리로귀결됐다.
반면에 한국은 선진국의 위세와 개도국의 숫자에 밀려 입지를 상실하고 있는 형국. 더욱이 세계경제의 거인으로 부상한 중국이 다자무대에합류함으로써 한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조짐이다.
정부대표단 고위관계자는 “ 다자협상에서의 협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이해당사국의 폭을 넓힐 수있는 지역ㆍ양자협정 체결에 힘을 쏟아야 한다”며 “이와 함께 우리의 협상전략도 전면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카타르도하=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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