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최근 전세계 156개국을 조사해 발표한 경제자유지수는 한국의 경제적 자유도 등급을 38위로 매겨 지난해보다 9계단이나 강등시켰다.그 배경은 한국에 대한 보고서의 총평이 설명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개혁이 주춤하고 있으며 임기후반 레임덕 현상에 따른 정치적 입지불안으로 다시 개혁이 가속화하기는 어려울 것…"
정치의 레임덕이 경제를 정지시키는 한국적 현상은 이제 국제적으로도 공인을 받게 된 모양이다. 실제로 1972년 이래 6차례 경기순환 사이클이 평균 53개월로 대통령의 임기와 대체로 일치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1년이 휠씬 넘게 남아있지만 정치에서는 이미 레임덕의 징후가 뚜렷해 지고 있다.
여당 총재직을 내놓은 김대통령의 선택을 레임덕의 신호탄이라 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권력을 떠받치는 당ㆍ정의 양축가운데 한 쪽을 잃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당장 농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차를 불태우고 경찰과 각목싸움을 벌이는 살벌한 광경,양대 노총의 노동자와 교원단체 교사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나서는 모습에서도 레임덕을 떠올리게 된다.
청와대측은 총재직 사퇴가 정파를 초월해 국정에만 전념하기 위한 대통령의 적극적 결단이라고 설명한다.
지금 당면한 국정의 최대현안은 남북문제와 경제를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남북문제는 남북 장관급 회담 결렬이 보여주듯이 판 자체가 깨져버려 새로운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승부를 걸어야 할 국정 과제는 경제 살리기뿐이다.
내년 우리 경제는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성장괘도로 다시 진입할 것인지, 아니면 장기불황의 헤어나지 못할 늪에 빠져버릴 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국가의 명운이 갈리는 전환점이다. 정치의 레임덕은 어쨌든 간에 경제에서 만큼은 결코 레임덕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 개인이 아닌, 국가를 위한 절박한 요청이다.
경제의 레임덕을 막는 방책을 한마디로 한다면 시장(市場)의 신뢰회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해 경제 주체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경제운영의 청사진과 원칙을 제시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노력이다.
시장의 신뢰는 유리그릇처럼 깨지기는 쉬운 반면 회복하기는 어렵다.
시장질서의 정착을 외치면서 관치경제의 구태를 답습하는 표리부동, 적자생존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평등적 복지정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무원칙, 의약분업과 주 5일 근무제처럼 정교한 대비가 없이 일을 벌였다가 혼란을 자초하는 어설픔이 반복되면 시장의 버림을 받을 뿐이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포기한 직후 첫 인사에서 정책기획수석에 통상전문가인 한덕수(韓悳洙)전 외교통상본부장을 임명한 것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지역 편중인사와 낙하산 인사로 인해 정부나 산하기관, 공기업 등 국가경제를 움직이는 중요자리에 비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한 것이 이 정권의 최대실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시장의 신뢰, 국민의 신뢰는 이런 작은 일 하나 하나를 통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배정근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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