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예술영화 살길은 어디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예술영화 살길은 어디에…

입력
2001.11.15 00:00
0 0

*임순례감독-김소영교수 대담‘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을 만나자,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영화의 감동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찬사로 그는 걱정을 대신하고 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름’(감독 윤종찬)은 그래도 호사를 누린 셈이다. ‘나비’(감독 문승욱), ‘고양이를 부탁해’(감독 정재은)등 이른바 작품성 높은 영화들이 평단의 열띤 옹호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천박한 영화’만을 선호하는 관객만이 문제일까? 대안은 없을까? 두 사람이 열띤 대화를 나눴다.

김소영(사진 위)/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소매치기’(Pickpocketㆍ1959년)에 이런 말이나온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 너를 만나게 됐다”고.

희미한 삶을 살고 있는 남자의 공간 안으로 여자가 들어오는 설정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70, 80년대 우리의 문제를 2000년식 방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왜 관객이 들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의 관객은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싶어한다. 성(性)이나 계급 같은 너무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말을 거는 영화보다 즐기는 영화를 원하는 것 같다.

임순례(사진 아래)/ 관객이 ‘상처’를 두려워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비’나 ‘고양이…’ 처럼 상처를 드러내는 영화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 삶의 근간이 될 수 있다.

판타지가 영화의 한 축이라면, 현실을 재생하는것은 예술영화의 한 축이다. 그러나 왜 사는지 모르고, 유행하니까 사는 핸드폰처럼, 영화도 그렇게 선택되는 것 같다.

‘조폭마누라’나 ‘킬러들의 수다’는 잘 만든 오락영화이지만 이전에 할리우드가 제공한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남자 주인공이 기타를 치고 있는데, 칼 맞은 친구가 들어와 자해하는 장면은 조폭영화에 시달리는 한국 예술영화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와이키키…’는 매우 유머 감각이 뛰어난 영화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금 주류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종의 파시스트적인 사랑을 하고있다.

모든 언론이 영화의 관객수, 극장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영화가 극장 개봉이 끝난 후 어떤 사후적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

임/ 지금 상황은 엉덩이가 무거운 관객은 영화를 볼 수 없는 시스템이다.

작가주의 영화의 경우 극장을 많이 잡고 빠른 시일 내 결과를 보려는 대량 배급 방식 전략은 이제 재고해야 한다.

물론 제작사 명필름이 극장을 빌려 ‘와이키키…’ 장기상영에 들어간것은 행운이지만, 새로운 배급 체계가 절실하다.

김/ 그간 소외됐던 영화가 문화의 체계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꽉 막혀 버린 듯하다.

임/ 좋은 영화라면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감독의 영화쯤? 그러나 호황의 부스러기라고 해야 할까. 최근 한국영화의 수확은 그 언제보다 풍성하다.

이런 추세로 5~10년만 버티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영화 생산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신인의 발언권을 소진시킬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는 자국 영화 보호를 위해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세제 혜택을 준다. 물론 제도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문제지만.

영화진흥위원회가 스크린을 빌려 준다던가, 극장과 제작사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 나는 제도주의자가 아니지만, 이 대목에 오면 제도를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은 전혀 덩치가 다른 두 체급의 사람을 검투장에서 싸우게 하는 것 같다. 국가의 정책 지원과 영진위 활동이 생산 중심의 정책으로 상당 부분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배급 쪽으로눈을 돌려야 한다. 방송사가 예술영화에 공동 투자하거나 예술영화를 의무상영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영국의 채널4, 프랑스의 카날플뤼는 방송사이면서 제작사이다.

임/ 작가영화의 경우 지방 관객은 서울의 30~40%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지방에는 예술영화관객이 없을까.원천적으로 영화 볼 기회가 박탈되고, 관객이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에 최소 4, 5개관, 지방 주요도시 5곳 정도에 장기상영이 가능한 전용관이 생겨야 한다.

김/ 지금의 배급 시스템은 제작자의 의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예술영화 전용배급사가 없기 때문에 제작사가 장기상영을 하려 해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대안적 배급, 새로운 형태의 배급이 가능해지면 새로운 관객인 지식인과 중산층(10년 전만 해도 이들은 ‘한국영화’라면 고개를 흔들었다)을 흡수할 수 있다.

임/ 1988년 프랑스에유학 갔을 때 파리 한 영화관에서 82년작 일본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를 상영하고 있었다.

5년 후 내가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도 요일을 바꾸면서 일주일에 한번 그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관객이 한 명뿐이라고 상영 않거나 자막을 끊는 일은 없었다.

김/ 몇년 전 뉴욕의 필름포럼(120석)이라는 극장에서 집시에 관한 영화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플루트를 들고 와서 영화에 나오는 음악을 연주했다.

곡을 외울 만큼 영화를 많이 본 것이다. 예술영화에 감응하는 이의 권리가 보호되는 현장.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극장의 모습이었다.

임/ 테이프에 복사한 일본영화를 보다가 프랑스에 가서 극장에서 다시 보니 일본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도 영화를 통해 알았다.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산업의 한 축이자 많은 것을 주는 문화 자체다.

김/ 왜 여성 감독의 영화가 참패할까 생각해 봤다. 그건 그들이 더 괜찮은 영화를 만들기 때문은 아닐까. 허황한 시선을 배제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임/ 우리 영화가 아직 초기 발전 단계라서 그런 것 같다. 아직은 작가주의 감독이 많지만 곧 상업 논리를 수용한 감독이 대거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김소영 선생님이 만든 다큐멘터리 ‘거류’는 언제 개봉하나.

김/ 바로 그게 문제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은주기자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