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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김'수사 의문 …당시 안기부 은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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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김'수사 의문 …당시 안기부 은폐했나

입력
2001.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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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김 사건’이 윤태식씨의 자작극으로 판명됨에 따라 당시 안기부가 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동조 또는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유성환(兪成煥)전 의원의 국시(國是) 논쟁과 건대 사태 등으로 정권이 곤욕을 치르던 상황에 사건이 터진 것도 의심스럽지만 사건 자체의 진행과정에도 석연치 않은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당시 안기부가 왜 윤씨의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했느냐는 부분이다. 윤씨는 1987년 1월5일 한국대사관을 찾아 ‘납북 중 탈출’주장을 했으나 검찰 조사 결과 그는 이날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야당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한국 정보기관에 포착됐다”며 자진 월북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씨는 이후 미국대사관에 정치적 망명까지 요청했다가 역시 거부당한 뒤 연락을 받고 찾아온 한국대사관 직원에게 인계됐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외무부 직원들도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윤씨를 신문했던 직원들은“그의 진술이 횡설수설해 신빙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몰랐을 리 없었던 안기부는 어떤 이유인지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기자회견까지 주선했다.

안기부가 뒤늦게 윤씨로부터 범행일체를 자백 받았으나 이를 은폐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건 발표 얼마 뒤인 1월27일 국내 언론은 ‘북한공작원’김씨가 26일 홍콩 자택의 침대 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기사를 앞 다퉈 보도했다.

당시 김씨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홍콩 경찰은이후 윤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국내에 신병인도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기부는 별다른 해명이나 추가 발표 없이 그 해 4월까지 윤씨를 남산 대공분실에 ‘보호’한 뒤 풀어줬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윤씨가 당시 안기부와의 관계에 대해 일부 진술은 하고 있으나 검찰이 밝힐 상황은 아니다”라며 “윤씨의 진술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혀 윤씨가 당시 안기부에 모종의 자백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시 안기부의 해외업무는 2차장이 총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윤씨의 혐의사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이미 공소시효가 완료됐다는 이유로 당시 안기부 관계자에 대한 수사에 난색을 표명, 안기부 개입의혹이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남편 윤태식 미스터리

윤태식씨는 1998년 보안 솔루션 회사를 설립한 이후 일약 업계의 총아로 떠오른 벤처1세대의 대표주자다. 그러나 정보통신·보안분야와는 동떨어진 그의 경력과 사기·폭력 등 범죄전력,문란한 사생활 등으로 인해 그의 벤처 성고인화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윤씨는 98년 9월 개인의 생체특징을 이용한 보안체계와 인터넷 금융·상거래 시스템을 개발,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99년 벤처기업인상을 수상한 윤씨는 올 7월에는 세계적인 지문센서용 반도체칩 생산업체인 미국의 V사를 인수하고 중동국가와 1억달러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는등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벤처의 지분 50%가량을 소유한 윤씨는 산하 기술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영에도 간접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조사 결과 드러나 윤씨의 전력은 성공신화와는 대비된다. 중학1년을 중퇴한 그는 78년 이후 무려 10여명의 여성과 혼인·동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력 ·경력에 대해서도 '육군사관학교 대위 출신''대북한 특수공작원''홍콩 중문대학교 출신''83년 중국 민항기 사건당시 대통령 특사활동'등으로 허위 포장됐다.

86년 초 비디오 사업을 위해 홍콩으로 건너간 윤씨는 현지 교민의 소개로 술집 호스티스 출신인 김씨를 만난뒤 정식 결혼했다. 그러나 김씨의 과거 전력과 사업자금 등으로 불화를 겪다 부인을 살해하고 피랍 자작극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귀국후 영화배급사업을 하다 보증문제로 파산한 윤씨는 94년 방송국 직원의 신분증을 위조한 신용카드로 수억여원을 사용한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96년 7월 출소했다.

그는 이후에도 내연녀와 기업인들을 상대로 위폐감식기 및 대중국 사업 등을 명목으로 수천만원대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지식이 없는 그가 세계적 최첨단 보안기술을 개발한 경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윤씨측은 "수감생활 중 집중 연구해 아이디어를 발굴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업계에서도 원천 기술력은 인정하는 분위기다.그러나 윤씨가 전직 장관L씨와 정치권의 인사 K씨를 회장과 임원으로 영입하는 등 정·언·관계 인사와 폭넓은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성장과정에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수지 김 사건 전말

13일 검찰이 윤태식(尹泰植ㆍ43)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함에 따라 ‘수지 김 사건’은발생 15년 만에 윤씨의 ‘납북자작극’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1987년 안기부의 발표에 따르면 윤씨는 그 해 1월2일 홍콩 자택에서 조총련계 일본인 2명으로부터 납치된 부인 김옥분(金玉分ㆍ당시 34세)씨를 되찾기 위해 싱가포르로 갔다가 북한대사관에 납치된 뒤 극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돼있다.

윤씨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북한대사관의 리창룡이라는 요원으로부터 아내가 조총련계 공작원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이후 스위스를 통한 월북을 강요받았으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 해 1월26일 김씨의 사체가 홍콩 자택 침대 밑에서 발견됨에 따라 윤씨와 사건 자체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기도 했으나 더이상의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숨진 김씨의 오빠가 윤씨를 살인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면서 다시 도드라진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이 살인죄의 공소시효(15년)를 40일 정도 남겨둔 이날 윤씨를 기소함으로써 진실규명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평소 부부갈등을 겪어온 윤씨는 87년 1월2일 김씨와 심하게 다투다 3일 0시20분께 둔기로 폭행, 실신하게 만든 뒤 여행용 가방을묶는 끈으로 그를 목졸라 숨지게 했다. 그는 범행 후 침대 매트리스에 사체를 숨긴 뒤 이부자리를 손보는 등 치밀한 은닉작업을 마친 뒤 4일 싱가포르행비행기에 올라 월북을 시도했다.

윤씨는 그러나 북한대사관이 월북을 거부하자 ‘여간첩의 납북 미수극’이라는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한국대사관을 찾아“피랍중 탈출했다”고 주장한 뒤 기자회견까지 열었던 것.

검찰은 사체의 머리부분이 베갯잇으로 가려져있었고 김씨가 혀를 깨문 흔적이 있는 등교살(絞殺)의 흔적을 포착, 지난달 윤씨를 구속한 뒤 취조를 통해 사실상 범행을 자백받았다.

윤씨는 그러나 “우발적 살해인 만큼 살인이 아니라 폭행치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법정 공방이 치열할 전망이다. 폭행치사죄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이미 기간이 경과해 법원에서 살인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처벌이 어렵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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